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내가 알고있는것들』<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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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은 고인이 되고 말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왕과 이란의 「팔레비」국왕, 그리고 나 셋은 모두 수에즈와 알렉산드리아를 연결하는 오일파이프라인(송유관)의 건설을 꿈꾸었다.
당시는 수에즈운하가 계속 봉쇄된 상태로 이스라엘이 에일라트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송유관을 건설한 직후였다.
우리의 구상은 지중해까지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여 이란산 원유를 유럽으로 수송하자는 것이었다. 외국전문가들은 이 계획에 4억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나는 「파이잘」국왕에게 이자금을 대라고 요청했다. 「파이잘」국왕은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돈을 빌든지 아니면 석유판매수입으로 이비용을 갚든지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이계획에 참가하라고 권유했다. 우리의 목적은 이집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아랍국가들이 이 전략적 프로젝트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나눠 갖자는데 있었다.
나는 「파이잘」국왕에게 아랍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단일 아랍국가 건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사람들이 왜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이자를 받는데에만 만족하고있는가를 이상히 여기고 있다. 그보다는 전 아랍국가들이 참여하여 공업과 상업부문의 건설계획에 투자하는편이 훨씬 낫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아랍세계에서의 유럽경제공동체 (EEC)와같은 기구를 구상하고 있었다.
「파이잘」국왕은 나의 제의를 받아들여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카타르가 50%를 댈터이니 이집트가 나머지 비용을 부담하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이들 아랍3개국이 참여한 송유관 건설계획은 성공했고 각국은 여기서 얻은 이익을 나눠 가졌다.
이제 「파이잘」국왕은 고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랍권 경제협조계획의 대부분도 사장되고 말았다.
내가 심사숙고한 계획중의 하나는 푹푹찌는 더위로 항상 고생하고있는 걸프지역의 우리 아랍형제국가들을위해 이집트내의 지중해연안을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지중해연안을 자유지역으로 분할하여 아랍각국이 한 지구씩 맡아서 투자함으로써 아랍제국간에 진정한 경제협력을 이룩할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아랍세계는 이런 경제협력을 통해 그 정치적·경제적 힘을 과시할수 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파이잘」국왕이 서거하고, 아랍제국 관계는 갑자기 악화됐다. 단순히 구호에만 그친 아랍제국의 협조관계가 강조될뿐 경제협력문제는 뒤로 미뤄졌다.
나는 이란의 「팔레비」국왕이 지중해연안 분할개발계획을 환영하여 자유지역에 투자할 것으로 기대했다. 73년제4차 중동전이후 「팔레비」국왕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포트사이드지구 개발계획에 투자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나는 지중해연안 자유지역을 「팔레비」왕에게 제공하면 그의 포트사이드 투자에 대한 보상이 될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란사태가 급진전되는 바람에 이런 계획은 진전없이 이란혁명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우리의 지중해연안 자유지역 계획으로 이득을 볼수있는 나라는 수단밖에 안남게 됐다. 우리가 수단에 지중해연안의 이집트 영토일부를 항구로 제공하게된 경위는 그렇게된 것이다.
나는 「누메이리」수단대통령과 이계획을 논의하여 서로 상대국내의 토지를 소유할수 있도록 하자는데 합의했다.
이문제는 이집트헌법에 따라 이집트의회의 승인을 받아야하는 문제였으나, 나는 거의 독단적으로 추진했다. 이집트 영토의 일부가 실제로 수단의 소유가 되기까지에는 앞으로도 여러 단계의 조치가 취해져야한다.
나는 이러한 지중해연안 자유지역개발계획이 사우디아라비아자유지역, 쿠웨이트자유지역, 카타르자유지역식으로 실현되면 진정한 아랍세계의 협력관계가 이뤄질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보다 큰 공동협력계획도 성공할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가 이렇듯 진정한 아랍세계의 협력을 갈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국가들이 이집트에 등을 돌림으로써 아랍세계가 결렬된 것은 유감이 아닐수 없다. 아랍국가들은 78년 바그다드 정상회담(별항주)에서 이집트를 따돌리기로 결정함으로써 그들의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날 수단과의 협력문호만이 열려있게된 것이다.

<바그다드 아랍정상회담>
▲주=78년11월3일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모인 아랍국가 정상들은 이집트가 미국을 중개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캠프데이비드)을 맺음으로써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치 않던 아랍권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이 회의에서 이집트의 응징책을 논의했다.
바그다드회담은 「사다트」 이집트대통령에게 캠프데이비드협정의 탈퇴를 종용하기 위해 사절단을 카이로에 파견했으나 「사다트」가 이를 거절하자 이집트를 아랍연맹에서 축출했다.
그러나 이회담에는 아랍권의 맹주였던 이집트와 이집트를 지지하는 수단·오만등을 제외한 21개아랍국가대표들과 PLO대표가 참석, 절름발이 회담이었다.
아직도 이집트는 아랍연맹에 복귀치못하고 있으나 작년10월6일 「사다트」죽음후 후계자 「무바라크」대통령이 아랍권으로의 접근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어 오는 4윌25일 시나이반도 반환이후 어떤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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