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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터회고록 국내중점연재 「신의를 지키며」…캠프데이비드 산장의 13일⑬

    제13일(78년 9월 17일 일요일) 나는 일어나는 길로 「사다트」를 찾아가 그와 협정 안의 마지막 문귀 손질을 시작했다. 그가 내세운 몇 가지 수정안은 이스라엘 측으로서도 받아들

    중앙일보

    1982.11.02 00:00

  • 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내가 알고있는것들』

    67년6월5일, 이집트는 제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에 참패했다. 그 패전의 씨앗은 일찌기 「낫세르」의 독재통치 기간중에 뿌려졌다. 나는 「낫세르」의 통치방식을 지켜보면서, 30년간

    중앙일보

    1982.04.14 00:00

  • 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내가 알고있는것들』

    지금은 고인이 되고 말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왕과 이란의 「팔레비」국왕, 그리고 나 셋은 모두 수에즈와 알렉산드리아를 연결하는 오일파이프라인(송유관)의 건설을 꿈꾸었다.

    중앙일보

    1982.04.13 00:00

  • 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내가 알고있는것들』

    「엘리자베드」영국여왕과 만나고난후 우리일행은 곧 대서양을 건너 「레이건」미국대통령이 기다리는 워싱턴으로 갔다. 비행기가 도착한 앤드루즈공군기지에는 「헤이그」국무장관이 영접 나와있었

    중앙일보

    1982.04.09 00:00

  • 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내가 알고있는것들』

    나의 워싱턴 방문은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선 직후부터 계획됐다. 81년초 카이로에 들른 「알렉산더·헤이그」신임 미국무장관은 나를 미국으로 공식초청했다. 방미일자를 일단 8월초로 잡

    중앙일보

    1982.04.08 00:00

  • 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내가 알고있는것들』

    나는 왜 아랍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선택했는가-. 뒤에 캠프데이비드평화협정이라고 불려지는 이스라엘과의 화해조치를 추구하게된 내 심경의 일단을 밝히고자 한다. 내

    중앙일보

    1982.04.05 00:00

  • 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내가 알고있는것들』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협정을 체결하려 한다는 이유로 아랍세계로부터 호된 비난을 샀었다. 그러나 그들이 캠프 데이비드의 내용이 알려지기도 전에 무작정 우리를 몰아세운것은

    중앙일보

    1982.04.02 00:00

  • 사다트최후의회고록 제2부 『내가 알고있는것들』

    이스라엘이 81년에 인접 레바논과 이라크에 대해 적대행위를 함으로써 나의 예루살렘방문으로 시작된 중동평화정착 노력은 와해의 위기를 맞았다. 그해 4월 이스라엘의 레바논에대한 보복폭

    중앙일보

    1982.04.01 00:00

  • 중동 평화 회담 사실상 결렬

    【예루살렘22일AP합동】「매나헴·베긴」「이스라엘」수상은 22일「아놔르·사다트」「이집트」대통령이 지난 18일「예루살렘」합동 정치위원 회의「이집트」측 대표「모하메드·카멜」외상을 본국

    중앙일보

    1978.01.2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