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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와 미국 국가에 평양 시민들 기립(세계여자권투선수권)

중앙일보

입력

[마이데일리 = 김한준 기자] 지난 달 28일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서 열린 WBCF(세계여자권투협의회) 세계 3대 타이틀전의 라이트 플라이급 경기(북한 '최은순' vs 미국 '이본 카플스')가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1만3천명의 관중들이 성조기를 앞세우고 등장하는 미국 선수에게 박수세례를 쏟아붓고, 미국국가가 울려퍼지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기립했기 때문이다. 평소 원색적인 비방이 오고가던 양국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한 조선 중앙 방송과 함께 이번 경기의 중계를 맡았던 케이블 위성방송사인 KBS SKY(사장 오수성)의 김관호 PD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북한 관중들의 태도가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나. ▲강제적인 그런 것은 느낄 수 없었다. 북한 관중들은 이번 경기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북한 최대라는 '류경 정주영 체육관'이 꽉 찼을 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도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하자 북한 조선 중앙 방송이 설치한 방송을 시청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경기에 임하는 열정이 자연스레 표현된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해달라 ▲미국 가수 어셔의 히트곡이 흐르면서 성조기를 앞세우고 미국 선수가 들어왔다. 관중들이 박수를 쏟아냈고, 인공기와 성조기가 링 위에서 나란히 세워진 가운데 미국국가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상대국에 대한 예를 갖춘 것 같았다. 경기가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관람예절은 돋보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관중들이 유명우나 장정구 선수가 타이틀 매치에 열광하는 것과 흡사했다. 미국 선수에 대한 비방은 일절 없었다. 자국 선수에 대한 응원만이 있었을 뿐이다. ―북한 당국이 특별히 이번 경기를 배려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원래 이날 경기는 평양내에 있는 스포츠청 레슬링 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기 며칠 전 갑자기 북측이 북한 최대의 경기장인 '류경 정주영 체육관'으로 변경했다. 취재진과 취재장비도 갑절로 늘었다. 원래 경기의 보도를 위해 배정된 북한 취재진은 20여명이었다. 중계 카메라도 4대만이 배정돼 있었다. 하지만 현장엔 40여명의 취재진과 8대의 중계 카메라가 몰려들었다. 크레인까지 동원된 체육관은 마치 대형 콘서트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통제적이고 폐쇄적으로 알려진 것이 북한이다. 경기장에서 이런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갔지만 현장에서 본 모습은 그와 정 반대였다. 특히 취재진들의 모습이 그랬다. 보다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기자들의 모습은 한국의 여느 취재 현장과 다를 바 없었다. 카메라맨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보였다. 자유까지는 아니지만 북한에도 경쟁이라는 화두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의 최은순 선수와 대전했던 카플스 선수의 반응은. ▲대체로 만족한 모습이다. 경기장 내에서의 환대도 고무적이었지만, 경기 이외 시간에 대한 북한 측의 배려가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카플스에게 배정해 준 현지 가이드가 상당히 친절하고 세심해서 만족스런 평양 관광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체류하는 동안 우려했던 불미스런 일도 전혀 없었다. 평양 시민들에게 카플스는 '미국인'이 아니라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인 중 하나였다. ―이번 대회 중계방송을 어떻게 해서 기획하게 됐나. ▲침체돼 있던 복싱의 활성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었다. 작년 중국 심양에서의 타이틀 매치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고무돼 있던 중 새로 창설된 WBCF의 경기가 평양에서 열리게 되어 연이어서 인연이 닿게 됐다. 좋은 결과가 나와 만족스럽다. 평양 시내 한복판에서 열린 흐뭇한 북미 대결은 KBS SKY 스포츠 채널을 통해 오는 4일과 5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녹화 방송될 예정이다. [28일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열린 WBCF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 매치에서 북한의 최은순과 미국의 카플스가 대전하고 있다.(왼쪽) 경기 시작 전 인공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링에 올랐다. 사진제공=KBS SKY] 김한준 기자 기사제공: 마이데일리(http://ww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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