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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알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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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타고난 상태의 몸이 알몸이다. 서양 예술계에선 알몸(naked)을 누드(nude)와 구별 짓기도 한다. 알몸은 옷을 죄다 벗은 자연 그대로의 육체를 말한다. 누드는 벌거벗은 몸을 예술가가 이상적인 형태로 다시 조합한 것으로 본다. 알몸은 수줍고 수동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하지만 누드는 균형잡힌 자신만만한 육체를 뜻한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가 분류한 방식이다.

누드 하면 여자의 알몸을 떠올리지만 누드의 원조는 남자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누드는 남자의 알몸을 의미했다. 그리스어 '김나시온(Gymnasion.체육관)'은 '알몸 상태(gymnos)'에서 유래했다. 젊은이들이 알몸으로 육체를 단련하는 곳이었다. 유럽의 주요 박물관에 진열된 고대 그리스 조각품은 대개가 이 알몸을 형상화했다. 근육질의 남성 누드가 많은 것은 남성이 힘의 원천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에 와서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 등 위대한 예술 작품에 영감을 준 단골 소재는 알몸이었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사진이든, 완벽한 몸매든 아니든, 누드 작품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키는 것은 우리가 건강하다는 징후다. 알몸은 육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생명력과 원초적 본능 등 복잡한 감정과 미묘한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한다. 그러나 예술의 경계를 벗어나면 알몸은 음란의 대상으로 추락한다. 저급한 성욕을 자극하고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주는 것은 음란행위다. 공연(公然)음란죄(형법 제245조)가 적용된다.

병영 내에서 벌어진 '알몸 진급식' '알몸 얼차려' '속옷 들여다보기'는 군대의 추억이란 장난으로 돌리기엔 도를 지나쳤다. 성적 모멸감을 주는 음란행위이자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극히 개인적인 알몸 상태를 강제하는 성추행이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하는 죄(형법 제298조)다.

약자의 입장에 선 졸병에게 알몸을 강요하는 선임병은 이 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엊그제 정부와 여당이 병영 내 성추행 행위에 대해 최고 10년까지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군 형법을 고치기로 했다. 이제 남성의 남성에 대한 성추행을 걱정하는 시대가 왔나 보다.

고대훈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