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인들이 긴 밤을 보내는 방법…생활 체육 현장을 가다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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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스웨덴의 겨울은 11월에 시작해 4월까지 이어진다. 한겨울엔 4~5시간만 해를 볼 수 있다. 긴 밤은 사람들을 지치고 우울하게 만든다. 과거 스웨덴은 자살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였고, 정부차원에서 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시내 중심가의 대형 쇼핑몰은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다니엘 안데르손(45)은 "스웨덴 사람들 대부분은 일을 마치고 집에 일찍 돌아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러나 스웨덴에는 '환한 밤'도 있다. 곳곳에 있는 실내 체육관은 밤새도록 불을 밝히며 시민들에게 땀 흘릴 공간을 제공한다. 통계개발원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3'에 따르면 생활 체육 참여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스웨덴(94%)이다. 한국인은 54.7%에 불과하다.

스웨덴에는 실내 체육관이 많다. 아무래도 밤이 길다 보니 야외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에는 밤새도록 운영되는 수영장, 헬스클럽, 탁구장, 아이스링크 등이 갖춰져 있다. 기자가 방문한 스톡홀름 동쪽에 위치한 티레쇠(Tyreso·한국의 구에 해당)는 인구 4만 여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아이스링크가 3개나 된다. 티레쇠 한비켄 스포츠클럽(Tyreso Hanviken SK)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클럽이다. 크리스토퍼(15)는 3살 때 아이스하키를 처음 시작했다. 지금은 클럽의 U-15(15세 이하) 팀에 속해 일주일에 여섯 번, 2시간씩 훈련을 한다. 한비켄 클럽은 프로 선수를 육성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는 프로 리그에서 뛰는 것이 꿈이다. 스웨덴 인구의 약 3분의 1인 약 340만명은 지역 클럽에 가입해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스웨덴에서 아이스하키는 축구와 함께 국민 스포츠로 대접 받는다. 한비켄 클럽에서 아이스하키팀 매니저를 맡고 있는 케네스 뢰프그레(54)는 "추운 날씨가 길어 스키, 아이스하키, 스케이팅 등 동계 스포츠가 발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중에서도 아이스하키는 가장 매력적인 스포츠"라며 "아이들이 팀워크를 배우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익힐 수 있는 스포츠다. 몸싸움이 격한 스포츠지만 지켜야할 룰도 배울 수 있다. 스웨덴 부모들 대부분은 아이들이 아이스하키를 배우길 원한다"고 말했다. 4살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루드빅(13)은 "아버지의 권유로 아이스하키를 처음 접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스틱을 잡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고 밝혔다.

케네스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아이스링크에 출근한다. 그는 클럽에서 스폰서십 업무를 담당한다. 아이가 4살 때 스포츠 클럽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보수를 받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료 봉사다. 회사가 끝난 이후 클럽에서 일을 돕는다. 그는 "아이가 운동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지 않나.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보수라도 당연히 해야한다"고 말한다.

카린 레델리우스 스웨덴 체육대학(GIH) 교수 역시 자녀가 속한 여자 축구 클럽에서 무보수 코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스웨덴 부모들의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스웨덴 국가 체육회(RA) 이사회 임원을 맡고 있는 그는 "스웨덴 체육 정책에는 여러 목표가 있다. 첫 번째는 국민들이 건강 유지를 위한 활동을 돕는 것이다. 또 사회 통합을 이루고 지역 민주주의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다"며 "엘리트 스포츠 선수가 약 7000명인데 그들에 대한 지원은 가장 후순위"라고 말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생애 첫 스포츠 활동에 대한 지원이다. 카린 교수는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스포츠에 흥미를 느끼고 꾸준히 즐길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스웨덴의 생활체육은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스웨덴에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하는 지방 행정 시스템이 발달해 있다. 학교에서도 체육 시간이 별도로 배정되어 있지만 1주일에 2시간 정도로 길지 않다. 아이들 대부분은 지역 클럽에 속해 학교가 끝난 뒤 모여 스포츠를 즐긴다. 연령별 클럽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성인이 되더라도 체계적으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아이스하키 클럽 활동에 드는 비용은 1인당 1500만원(1개월 120만원) 정도다. 일단 스웨덴 국민이 스포츠 클럽에 가입하면 국가와 지역 정부에서 지정된 예산이 나온다. 비중이 크지 않다. 대신 커뮤니티 활동의 일환으로 지역 클럽팀이 전국 대회에 출전하게 되면 주민들이 모여 바자회 등을 통해 모금 활동을 한다. 지역 유지, 기업의 스폰서십도 활발하다. 그렇게 되면 1인당 부담 금액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물론 스웨덴의 스포츠가 실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에는 '공동 접근권(Right of Common Access)'이 있다. 스웨덴 국민 누구나 산, 들, 강 등 자연 환경에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호수가 많은 스톡홀름에선 여름에 수영과 카누를 즐기고, 겨울에는 꽁꽁 언 얼음판 위에서 아웃도어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스톡홀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쿵스트라드갸르덴(Kungstradgarden·왕실나무공원)도 11월이 되면 스케이팅장으로 변한다. 스톡홀름 공원 대부분이 겨울에는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스웨덴은 복지 선진국답게 스포츠를 통한 복지 지원이 상당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한국도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민생활체육회는 동계스포츠 보급과 확대를 중점사업으로 선정, 다양한 지원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도 스웨덴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시도생활체육회가 조직돼있다. 스웨덴에 비해 인프라가 열악하지만 최근에는 접근성이 좋은 실내 스키장 등을 활용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저렴한 가격으로 스키나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평창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동계 스포츠 인프라가 확충되면 동계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해서다.

스톡홀름=김원 기자 raspos@joongang.co.kr

[사진 설명]
1. 티레쇠 한비켄 스포츠클럽에서 아이스하키를 하는 크리스토퍼(15), 존(14), 루드빅(14).
2. 뢰프그레 - 케네스 뢰프그레 티레쇠 한비켄 스포츠클럽 매니저
3. 카린 교수 - 카린 레델리우스 스웨덴 체육대학(GIH)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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