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할리우드 휩쓰는 가면 영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 배트맨 비긴즈

▶ 킹덤 오브 헤븐

▶ 스타워즈

▶ 판타스틱 4

지난달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에서 연기파 배우 에드워드 노튼을 알아봤다면 눈썰미가 비범하게 매섭거나, 아니면 사전에 관련 정보를 입수한 영화팬일 것이다. 에드워드 노튼은 '킹덤 오브 헤븐'에서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영화 내내 은빛 가면을 쓴 예루살렘의 통치자 볼드윈 4세를 연기했다.

한센병(나병)에 걸려 죽어갔던 볼드윈 4세는 자신의 변한 모습을 대중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가면을 사용했다. 실력자의 추한 외모를 공개하는 건 주변의 정적들에게 매우 위험한 일. 가면이란 변장을 통해 권력을 유지했던 것이다. 올 여름 할리우드 영화에 가면이 유행이다. '킹덤 오브 헤븐'의 에드워드 노튼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미 선보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와 '배트맨 비긴즈', 앞으로 개봉할 '판타스틱 4'에도 가면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 뮤지컬이 원작인 '오페라의 유령' 등 여러 화제작에서도 '가면 인간'이 출현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가면인가.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의 분열된 캐릭터가 스크린에 집중 투사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성공.권력을 꿈꾸며 순간순간 '다른 얼굴'을 해야 하는 현대문명의 그늘이라는 것이다.

'스타워즈 3'의 다스 베이더가 대표적 경우다. 촉망받는 제다이(기사)였던 애너킨 스카이워커는 스승을 배반하고 악의 세력에 굴복하며 '검은 투구'의 다스 베이더로 돌변한다. 사랑.권력을 동시에 거머쥐려고 했던 탐욕 때문에 애너킨은 온몸이 망가지는 중상을 입고, 결국 산소호흡기가 달린 특수가면을 쓰고 생명을 유지한다. 자승자박이다.

'탐욕=가면'의 이미지는 8월 12일 국내 개봉(미국 7월 8일)하는 팬터지 액션극 '판타스틱 4'에서도 재연된다. 성공을 위해 친구마저 내팽개치는 야심만만한 사업가 '빅터 본 둠'이 악의 화신 '닥터 둠'으로 변한다. 우주광선과 충돌하면서 유전자가 변형되고, 급기야 온몸이 차가운 금속으로 돌변한 그는 흉측한 외모를 가리려고 '흑가면'의 신세를 진다. '스타워즈'의 애너킨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배트맨 비긴즈'의 '박쥐가면'은 콤플렉스를 숨기는 도구다. 어린 시절 동굴에서 마주친 박쥐떼에 기겁했던 귀공자 출신의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는 동시에 상대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두건과 망토를 쓴다. 그리고 평소에는 흥청망청 '부잣집 청년'으로 변장한다. 나약하고 소심한 청년이 '거미옷'을 입고 막강한 전사로 변신하는 '스파이더맨'처럼 '배트맨' 또한 자신의 약한 내면을 외부 도구(첨단장비.권력.재산 등)로 덮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분열된 자아를 상징한다. 할리우드는 하반기에도 '조로의 전설''브이 포 벤데타' 등 가면영화를 계속 내놓을 예정. 가면의 전성시대로 부를 만하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