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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일보 월례 포럼

저출산·고령화 어떻게 대처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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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은 지난 28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초청, 본사 대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오종택 기자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은 지난 28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연사로 초청해 저출산.고령화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서 김 장관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이해와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저출산이 경제.사회.문화의 복합적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일자리 창출이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주요한 해결책이며, 모든 대책을 정부가 전담하기보다는 민간의 참여가 적극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김정수)=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매우 고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인과 대처 방법에 대해선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진도=저출산은 문화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주의.이기주의로 흐르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사회를 되살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박우규=저는 경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과 45세에 정년을 맞는다는 '사오정'이라는 유행어가 있는 한 출산율이 높아지기는 어렵습니다.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이인실=경제와 사회.문화의 총체적 문제입니다. 경제적 해답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출산 문제는 20년 전부터 여성계에서 제기해 왔던 것입니다. 여성들이 '아기 안 낳는 스트라이크'라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근태=저출산이 경제 문제라는 지적은 단기적인 경우에 한정됩니다. 외환위기 직후 출산율이 크게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 정책만으로는 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동현=저출산은 평생직장이 없어지는 각박한 상황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고령화 문제도 결국 일자리 문제입니다.따라서 정부는 개개인 모두가 '평생 일할 능력'을 갖도록 하는데 집중해 지원해야 합니다.

▶유종일=아이를 키우는데 비용이 너무 들어갑니다. 옛날엔 자기가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광식=저출산이나 고령화 대책에 너무 매달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주어진 제약조건으로 받아들이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만들 것인가에 주력해야 합니다. 가령 군대를 병사 위주에서 기술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 등입니다.

▶지동현=조선족과 같은 한국계 외국인들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도 저출산 대책이 될 것 같습니다.

▶김근태=한국계 외국인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데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문화적 충돌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농촌 총각의 국제결혼이 많고 외국인 노동자를 3년 후 쫓아보내기 어려운 현실인 만큼 검토할 필요는 있습니다.

▶김정수=대책 마련에 있어 정부가 과욕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민간에 맡길 부분은 과감히 넘기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진도=일본은 고령화 대책을 펼 때 비영리 조직법을 통해 민간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신광식=국민에 돌아가는 복지 혜택보다 복지 관련 조직 운영비가 더 많은 경우를 경계해야 합니다. 정부가 보육시설 등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보다 출산 장려금을 받은 국민이 시설을 선택하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박원암=저출산 대책은 잘못될 경우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출산 대책으로 여성 고용 조건에 제약을 가하면 오히려 여성 고용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노성태=종합 대책이 많은데 이보다는 중요한 분야를 선택해 집중 추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육아 인프라 확대 등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김근태=복지관료주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복지 요구가 급격히 늘어 일이 폭주하는 현실도 걱정입니다. 복지지상주의 못지않게 시장만능주의도 안 됩니다. 보건 복지 서비스 같은 공공재 영역은 시장주의 원리만으로는 제대로 운영되기 힘듭니다.

▶이제민=국민의 정부에는 '생산적 복지'라는 구호와 그런 기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을 얘기하지만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이인실=선순환에 대해선 아무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복지 예산도 좀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산이 늘어났는데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복지 사각지대'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김근태=복지 예산이 늘긴 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 하에선 교육과 복지 서비스에 대한 투자, 그리고 이를 통한 인적 투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감안하면 복지 예산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행정부가 더 강력하게 복지 문제를 끌고 가야 하는데 국회가 막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유종일='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와 복지를 선순환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동감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보건.복지.교육 분야 종사자의 비율이 낮습니다. 이 부분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노성태=그러나 정부 부처들이 저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매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효율적인 대책이 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이인실=중구난방 식으로 돈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친 지출 위주의 정책을 재점검하고 꼼꼼하게 예산을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곽재원=긴박감과 집요함, 집중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현재 수많은 위원회를 조정할 때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를 신설해 중심에 놓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박원암=국민에게 정부가 다 해준다는 인상을 주기보다 어느 정도 각자 책임져야 할 문제로 인식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근태=그러나 우리나라 복지재정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점이 고려돼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부담하고 있는 비용을 과도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이제민=계층별로 볼 때 빈곤층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빈곤층의 아이들을 어떻게 잘 교육시켜서 사회적 생산성을 높일 것인가가 한 방안이 될 것입니다.

▶김근태=정부는 다각도로 정책적 노력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에 따른 부담 증가 등은 국민의 이해 없이는 정책 효과를 꾀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며, 이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정리=이영렬.김정수 기자<youngle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기조 발언

여성 차별적 문화부터 바로잡고 노년층 일자리 더 많이 개발해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합계출산율)는 2003년 현재 1.19명밖에 안 된다. 가임여성 인구도 2003년부터 줄어들었다. 어머니가 줄고 있는 것이다. 반면 고령화는 세계에서 그 속도가 가장 빨랐던 일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선진국들은 진작부터 겪고 있으며, 해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잘 풀리지 않는 '난제'다.

저출산 문제는 정부가 1980년대부터 대비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늦은 감이 있다. 이대로 가면 인구는 2020년 4996만 명을 정점으로 줄어들 판이다.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지정학.국제정치학적 위치로 볼 때 최소한 현재 인구 규모는 유지돼야 한다. 이 때문에 저출산은 국민적 의제가 되긴 했지만 국민이 스스로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게 고민이다. 주례를 설 때면 '아들딸 구별 말고 셋 낳아 잘 기르자'고 할 정도다. 얼마 전 '1, 2, 3' 운동을 벌였다가 국민으로부터 혼나기도 했다. 이는 결혼 뒤 1년 내 임신을 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잘 기르자는 운동이었다. 그랬더니 국민은 '그러면 40대에 파산한다'며 '1, 2, 3, 4' 운동이라고 비판했다.

희망적인 면이 없진 않다. 여론조사를 하면 여성들은 이상적인 자녀 수를 2.2명으로 꼽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정책을 잘 펴면 2.5명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육아의 사회화도 필요하고,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여성 차별 문화도 없애야 한다. 일본이 총력을 기울였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은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령화는 개인적으로는 축복이다. 그러나 대응을 잘못하면 재난이 된다.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저축.소비가 모두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대책은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임금 피크제와 직위 피크제를 서둘러야 한다. 노후 소득을 책임져 줄 게 국민연금인데, 이를 불신하고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분들은 투표권이 있어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어려움이 가중된다. 2007년에 시행 예정인 노인요양보험제도 보험료를 거두는 게 걱정이다. 중풍.치매 등 직접 닥치기 전엔 보험료를 잘 내지 않을 수 있어서다. 사회가 같이 고민하며 풀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