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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소련망명 전북괴노동당비서가 폭로한 그 생생한 내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하바로프스크에서 약1백여리 떨어진 바크라는 한적한 마을에 20호정도의 통나무집이 산재해 있었다.
한국인과 중국인 빨치산 망명객들은 풍운의 40년대 전반의 오랜 동면기를 이땅에서 보내고 있었다.
45년8월15일 희망의 날이 찾아왔다. 바크에서의 5년동안 그들은 실망과 절망을 극복해 왔고 육체적으로도 새로운 시기, 새로운 생활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4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북항일연군산하의 각부대는 이미 지탱할수가 없게 되었다. 영웅적 항전 영웅적 괴멸-이것이 그들의 역사였다. 일부 살아남은 빨치산대장과 대원들은 조직적으로 또는 뿔뿔이 흩어져 안전지를롤 찾아 방황해야만 했다.
그런 그들에게 가강 안전한 장소는 소련이었다. 초기에 마구 월경했던 사람들은 소련국경경비대에 체포되어 감금됐으며 그중의 일부는 일본의 밀정으로 몰려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김일성도 이 후자의 한사람이었다. 그의 신분문제는 모스크바에 가있던 주보중이 보증을 서주어 풀려 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일성의 그후 정치활동에서 엿보이는 반소경향도 실은 이 억류시기에 그가 느꼈던 열등감 때문이 아닌가싶다. 그리고 이런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의 신념이란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는 쉽게 생각해 볼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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