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왕조 성립비사(1)|하늘아래 둘도없는 나라|소련망명 전북괴노동당비서가 폭로한 그 생생한 내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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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조선반도의 북반부에서는「주체의 조국」이란 말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으며, 「지상낙원의 나라」라느니「사회주의 모범의 나라」라는 자랑이 요란스럽다.
김일성조선은 지구상의 어느나라와도 비교될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나라에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도, 불교도도 없으며 점장이도 없다. 또 참된 의미의 노래나 시도없으며 춤도 조각도 없다. 주민들은 같은 천으로 같은 빚깔과 모양을 한 차림이며, 여자들의 머리모양도 한가지 뿐이다.
철저한 식량배급제도가 실시되고 있으며, 몇몇 제한된 특권층을 제외하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있을 수 없다.
인류역사상 이 같이 완전하고 철저하게 통제되고 관리되는 사회는 또 다시 없을 것이다. 이 사회는 마치 알콜성분을 뺀 술이나 향기없는 꽃같이 비정상적·인공적·비인도적 사회다. 자식이 부모를 만나러 가려해도 특별허가가 필요하고, 취직·취학·주택·거주지선택등 모두 당사자의 의사와 희망과는 관계없이 진행된다.

<풍각장이 면모과시>
이 사회에서 허락되는 것은 단 한가지 뿐이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을 위해살고·싸우고·일하고·조직적으로 즐기는 것 뿐이다. 그것이 권리이자 의무다.
북한에 부임한 외국의 대사가 김일성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려면 먼저 피검사부터 받아야 한다.
병균이 옮을까봐 무서워하는 것이다. 1945년9월 김일성이가 귀국하여 평양 뒷골목을 누빌때만해도 그렇지는 않았다.
김일성이가 소련군 대위계급장을 달고 유곽에 드나들다가 소련군에게 붙들려 욕을 본일도 있었다.
차라리 그때는 1류 풍각장이의 면모조차 있었다.
일부 독자들은 북한에 아직도 조민당과 청우당이라는 기독교인과 전도교도들을 중심으로한 당이 존재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필자는 한 사람의 종교인도 없다고 주장하는가라고 의아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에는 단 1개소의 교회나 절이 없다. 목사나 중이 선교나 설법하는 일도 없고 찬송가도 울리지 않고 염주도 세지 않은지 오래다.
조만식선생이 세운 조선민주당은 공산주의자들인 최용건·정성언·이진산·이광국동지들이 점거하여 좌지우지하다가 최와 정은 북조선노동당의 부위원장 또는 부장으로 탈바꿈 했다. 김달현조인이 창립한 청우당도 지도부가 송두리째 숙청되고 말았다.
종교인들은 모두 김일성이가 교조가된「주체」라는 신흥종교로 이적했거나 아니면 육체적으로 말살되고 말았다.
그래도 조민당당수인 목사 강량욱은 목사나 당수라는 직합보다는 김일성의 외종조부라는 것이 영광의 담보로된 사람이다.
오늘의 주체종교의 신자들은 사후에 갈 곳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 벌써 위대한 어버이 수령이라는 눈부신 태양이 비춰주는 지상낙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출판된 권위있는 잡지「조선문학」에 얼마전에 실린 작품의 한토막을 인용하면, 『지금 지구위에는 2백에 가까운 나라들이 있고 4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서 종교와 미신이 깨끗이 없어진 나라는 영광스런 우리조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오직 하나뿐이다』(동지80년4호4페이지)라고 하고 있다. 모든 문예작품은 오로지 어버이수령에게만 바쳐져야 하고 그와 그의 처자와 부모, 조부모에 이르기까지 그가계만을 끊임 없이 찬송해야 한다. 김일성은 자기의 문예정책을 이렇게 말한바 있다.
『나는 사회주의 건설에관한 문예작품과 혁명투쟁에 관한 문예작품의 창작비율을 5대5로할 것을 제의한다』(김일성저작선집 4권157페이지)

<전기실명 김일성만>
이것은 작품주제의 50%는 혁명투쟁에 관하여, 즉 김일성의 항일투쟁시기의 활동에 관해 써야하며, 나머지 50%는 사회주의 건설, 즉 해방후 김일성의 활동에 관해 써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김일성에 대해서만 써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자기이외의 다른 그 어떤 혁명가나 활동가들도 살아 있을 때는 물론 죽은 뒤에까지도 실명으론 작품에 재현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문학과 역사의 울타리 밖으로 몰아냈다.
김일성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활동했던 안중근의사같은 애국자까지도 자기의 정신적 신봉자이자 추종자로 만들었다. 김일성이 희대의 파렴치범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전에 국립영화촬영소에서 만들어낸『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라는 영화를 북한에서 보지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중근의사가 처형장에 끌려 나가면서 자기를 옳게 지도해줄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 그가 고대한 지도자란 바로 김일성이라는 얘기다.
80년6월3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기관지 로동신문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조선의 우익정객인 김구를 애국의 길로 이끌어주신 이야기」를 2면전면에 실었다. 이 「실화」의 내용은 48년4월 남북점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하기위해 방문했던 김구선생과 김일성의 상봉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장군님, 저는 무식하고 과묵한 사람입니다. 장군님께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들을 적대시하여 온 사람입니다. 장군님, 지난 기간의 저의 처사를 노여워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젠 나도 다 알았습니다. 이제 다 늙은 것이 정권욕이 있겠읍니까.
장군님, 저는 어쨌든 이번에 여기에 왔던 보람이 있읍니다.
이번에 돌아와서 고목이 다시 봄을 만나고 기사회생하여 남으로 나갑니다.』

<그순간 수령을 쳐다보는 김구의 두눈에 눈물이 괴었다.
잠시 수령을 쳐다보던 김구는 품속에서 이제까지 소중하게 간직했던 「상해임시정부」의 인장을 수령앞에 정중히 내놓았다. 이제까지 생명보다 더 소중히 알던 인장이었다.>
이 기사의 필자는 지도·국기·인장을 피정복자가 정복자에게 바치는 투항의식장면을 센티멘탈하게 묘사했지만 김일성이 아량을 보여 그 도장을 돌려주는 장면도 빼놓지 않고 있다.
이처럼 모든 얘기가 객관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특히 김구가 『서울로 떠나기 앞서 단독으로 만나 귀중한 교시를 받았다』는 것까지 쓰여 있지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 애국자는 영원히 타계하여 영원히 침묵을 지키고 있고 역사날조의 명수 김일성은 살아남아 자기의 신화를 창조하는데 여념이 없다.
80년대에 들어와 다시 남북대화의 길이 열릴 기운이 보이는 지금 김일성이 김구씨를 입에 올려자기의 충실한 부하로 조작해내고 있는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할 것 같다.
우선 첫째로 김일성이 자기의 정치적 수완과 포용력을 과시함으로써 「유일한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한층 강화하려는데 주목적이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김구와 같은 거물도 김일성이 쳐놓은 망에 걸려 눈물을 흘리고 머리를 조아렸다는 것으로 그는 대의적 효과 뿐 아니라 내부인민들을 장악하는데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폴레옹 2세식>
둘째로 비약된 추리가 될지 모르지만 상대가 누구든 김구처럼 이용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미리 보여주어 상대방이 대화를 기피토록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북반부에 있어서 오늘의 공포정치와 불합리한 경제는 남쪽에 비해 불리한 입장이다. 따라서「진정한 공평과 대등한 입장에서의 남북대화」는 김일성이 반드시 바라는 바는 아니다.국제적 고립, 경제의 부진, 전례없는 공포정치의 강행, 특히 남한출신간부와 피납민주인사들에 대한 숙청은 남북교섭과 대화에 있어서 북쪽의 약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조국통일문제에 있어서 김일성측이 때때로 불합리한 제의와 독선적이라고 할수 있는 무리한 난제를 내세워 계획적으로 결렬시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구분열에 반대한다는 것은 대의명분으로 그것은 그것대로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현재와 같은 분단상태의 영원한 지속상태가 무엇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쪽의 무조건 항복을 기다리고 그같은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는 것, 이것만이 김일성의 통일정책의 기본이다.
합리적구상이 없는 시종일관성은 정책빈곤의 증거로서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밖에도 김일성에게는 통일정책이 있지만 그것은 무력통일이다. 50년대의 전쟁도발과 그후의 김일성일파가 내걸은 「우리들 시대의 조국은 통일돼야 한다」「김일성동지의 환갑을 맞기전에 조국은 통일될 것이다」(1972년) 등등의 슬로건을 되풀이하는 무모하다고 밖에 할수 없는 모험주의정책을 한국인으로서는 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보는 견해에 따라서는 최소한 현단계에서는 통일보다도 분단상태의 계속이 김일성에게 유리한 경우도 있다고 할수 있다.
김일성숭배의 강화, 신격화운동의 강행은 실제로 북괴에 있어서 개인독재체제의 강화를 목적으로하는 것만은 아니고 김일성식 통일구상과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통일되면 이미 준비가 된「수령」이 있다는 얘기다.
그 수령은 저쪽만의 수령이 아니고 위대하고 영명하며 전지전능한 최강급의 수령이라는 것이다.
지금 북괴가 선전수단을 동원, 김일성우상화를 세계규모로 전개, 확대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점에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김일성 전설이 북괴내부와 만주지방에 유포돼 있던 것처럼 선전한 것인데 실제로는 오늘날의 필요에 의해 창작된 것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같은 전설을 조작, 유포시키는데는 이 문장에 표현된 내용외에도 보다 심각하고 음험한 의도가 감춰져 있다.
즉 김일성은 위대하다는 의미보다도「새로운 왕조의 일세로서 그 자식 김정일은 김일성왕조의 2세」라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표도르l세, 또는 나폴레온2세라는 식의 호칭과 마찬가지다.
1세라는 용어가 한 사람의 왕의 시대를 지칭하는 말인 것은 오랜 옛날부터 통용돼온 것.
한국어의 논리나 어감으로 보더라도 세상에서「첫번째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면「일세」라고는 하지 않고「세일」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볼때 전설의 저자가 고의로 착각을 일으켜 무의식적으르 무지한 재능을 발휘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김일성 신격화운동에서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분단의 지속바라>
그것은 김일성이 인문과학과 문예의 유일한 주인공이라는 것과 함께 연구와 형상의 대상이되어 그 자신이 위대한 학자·극작가·평론가로서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김일성동지는 연극예술의 특성과 그 교원양적 의의에 대한 깊은 통찰에 바탕을 두고 일찌기 혁명의 길에 들어선 초기부터 혁명적 연극창조활동에 큰 의의를 부여했다.
그리고 불우의 고전적 명작「피바다」와 「어느 자위만의 운명」을 비롯, 수 많은 연극작품들을 참창, 혁명적 연극창조의 모범을 보여주고 우리 연극예술의 고귀한 혁명전통을 보다 풍부하게 해주셨다』(「김일성동지가 밝힌 전 사회의 혁명화·노동계급화에 공헌하는 혁명적 문학예술에 관한사상」평양사회과학출판사 73년간·1백28페이지) 5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은 노골적인 공포정치를 실시하면서 자기정적, 혹은 정적과 다소라도 관련이 있다고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제한으로 살육정책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소련출신 간부를 시켜 남노당출신 간부를 숙청하고 중국연안출신간부를 이용해서 이번에는 소련출신칸부들을 몰아냈다.
다음에는 항일빨치산간부를 이용, 연안파간부들을 다시 숙청했다. 남노당출신 수백명, 연안출신간부 수백명은 99%가 학살됐고 소련출신간부도 98%가 사살·투옥·해직·국외추방됐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자신의 동료였던 항일빨치산출신도 35%가 박해를 받았다.
김일성은 자신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용의자를 처단하는 것 보다도 한 사람의 죄인을 놓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인간이다.
그는 지성을 마비시키고 인간성을 타탁시키는 죄악을 범했다. 그리하여 총명하고 재능있는 인민들이 전대미문의 폭군 김일성의 마수 때문에 민족의 정기와 선량한 품성을 거세당하고 무기력한 노예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병들고 비인간적인 사회의 건설이 김일성통치 30년의 성과이고 위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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