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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강도…조사초점에 혼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원한과 강도 살인이냐. 파이로트 만년필전무 이성용씨 부인피살사건은 원한에 의한 계획범죄·단순강도 사이에서 수사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
경찰은 원한일 경우 피해자인 이씨의 회사와 가족주변에 사건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보고있으나 이씨로부터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받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씨가 전무로 있는 신화사에 전직간부들의 공갈사건이 있었고 최근에 직원 집단사표 등 인사불만이 있었는데도 이씨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수사의 진전을 못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 부부 주변이 상류층 기독교인답게 치정이나 금전관계 등의 의문을 살만한 부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숨진 장씨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 학교시절부터 신앙생활로 절제와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고 주위에서는 말하고 있다.
장씨는 자녀 2명을 학교에 보낸 뒤 자신의 유일한 취미생활인 분재와 교회의 일로「생활의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집 응접실 앞에 3평 짜리 온실까지 마련하고 있는 장씨는 매주 수요일 분재학원에 다니며 분갈이 기술 등을 익히고 때로는 회원들과 함께 지방 농장으로 견학을 하기도 했다.
집사로 있는 정릉감리교회에서는 1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나가는 이외에도 교인들과 자주 어울리며 교인들이 집에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었다.
이웃에 따르면 장씨는 내성적이나 겸손하고 사리가 분명해 모르는 사람이 찾아 올 경우 대문을 절대 열어주는 일이 없었다.
경찰은 장씨의 남편 이씨가 이른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파이로트 만년필 공갈사건에서 공갈 범들과 협상과정에서 혹독하게 대해 원한을 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 파이로트의 전직간부인 임모씨 (51·전 전무)와 송모씨(45·전 상무) 등 7명이 지난해 7월 서울지검 북부지청에 구속됐는데 이씨가 이 회사에 옮긴 것은 이보다 9개월 앞선 80년10월말.
대부분 근무 경력 18년의 창업공신인 이들은 회사가 자신들을 박대했다는 이유로「집단사표」를 결의, 지난80년4월 회사의 경리서류를 훔쳐낸 뒤 그해8월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협박, 3차례에 걸쳐 3억8천 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이들의 반란동기는 창립멤버로 회사의 중책을 맡아 왔는데도『회사축의 대우가 섭섭했다』는 것이었다.
남편 이씨는 가정적으로 다정한 편이었으나 80년10월 파이로트회사로 옮긴 뒤 귀가시간이 늦어져 가족들로부터 불평을 들어왔다.
이씨는 일요일이면 회사 차를 몰고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다니기도 했었다.
이씨의 회사직원들은 이씨가 회사에서 자상한 편이었고 담배는 안 피우지만 술은 가끔 입에 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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