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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 이번 주말부터 확대] "소득 안늘었는데…주말 지출은 두세 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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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5일제 근무로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일하기 위해 쉬는 시대에서 쉬기 위해 일하는 시대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5일제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지만 준비 없이 맞을 경우 오히려 위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주말 이틀을 잘 관리하면 천국이 따로 없지만 자칫하면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5일제가 샐러리맨에게 어떤 '숙제'를 던졌는지 점검해 봤다.

◆ 결국은 돈이 문제=주말인 25일 오후 한강시민공원 여의도 지구.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로 만원이다. 회사원 김강준(39)씨는 "40만원을 주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하나씩 마련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긴다"고 했다. 김씨는 "수도권 주변의 워터파크에도 몇 번 가봤지만, 차 막히고 물속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고…. 돈도 입장료.기름값 등을 합쳐 30만원 이상 들어가 매주 가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고 했다.

LG전자 강모(34) 과장은 종종 금요일 퇴근 직후 가족들과 2박3일 일정으로 동해안 오토캠핑에 나선다. 미리 오토캠핑 동호회에 가입해 '놀고 쉬는 정보'를 충분히 모은다. 다만 돈 씀씀이가 커져 부담스럽다. 강 과장은 "많이 쉬는 만큼 문화비 등 비용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증권사 직원 임모(39)씨는 주5일제 이후 "소득은 쥐꼬리만큼 느는데 지출은 '따따블'로 증가했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실속파로 변신했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토요일에 주로 등산을 한다. 돗자리를 가지고 가 누워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물 한 통과 김밥을 싸가기 때문에 많은 돈이 들 일도 없다.

◆ 높아진 업무강도=대기업에 다니는 한 사원(30)은 "가끔 주말에도 일 때문에 회사에 나가기도 하고, 6일간 할 일을 닷새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밀릴 때가 많다"고 했다. 문화관광부가 주40시간 근무를 하고 있는 직장인 8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8.1%가 주중 업무량이 늘었다고 답했다.

대우증권 이모 대리는 "주5일제를 시작하면서 출근시간도 빨라지고 평일 업무부담이 많아져 주말에는 평소 모자란 잠을 자느라 딴 생각을 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 '가정관리' 쉽지 않다=주말 이틀을 집에 있다 보니 가정 내 불화가 오히려 늘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여모(43)부장은 "예전에는 바빠서 아내와 싸울 시간조차 없었는데, 주말에 여유가 생기니까 종종 한꺼번에 몰아서 싸운다"며 "월요일이 되면 예전보다 더 피곤하다"고 털어놨다. 평촌에 사는 주부 오은주(39)씨는 "중학생에 다니는 딸아이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을 빼고는 등교해야 하는 데다 토요일 오후에는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주말 가족 여행을 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소외감 느끼는 자영업자=서울 가리봉동에서 삼겹살집을 하는 김종서 사장은 주말은 물론 명절에도 쉬지 않는다. 주말 이틀을 쉬는 샐러리맨이 부럽긴 하지만 주말에도 고객이 찾아오는 한 점포를 닫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는 "주5일제가 확산하면서 주말 매출은 확실히 떨어졌다"고 걱정했다. 경기도 일산의 그랜드 백화점 숙녀복 매장에서 일하는 이모(47.여)씨는 요즘 직업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낀다. 일요일에도 매주 나오는 이씨에게 주5일 근무는 여전히 '먼 나라 얘기'다.

서경호.박혜민.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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