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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극찬했던 ‘매출 1조 모뉴엘’ 의문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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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하며 강소 가전업체로 각광받았던 모뉴엘이 돌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1100억원이 넘는 이익을 기록했던 회사가 수출 대금을 회수하지 못해 갑자기 어려워졌다는 설명이 석연치 않아서다. 금융권에선 수출 규모를 부풀리는 가공매출로 회사를 키워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중견·중소기업 수출 금융 지원을 악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22일 금융감독원과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등에 따르면 모뉴엘은 지난 20일 수원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은행에서 빌린 차입금을 갚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모뉴엘은 기업은행 1470억원, 산업은행 1165억원 등 6000억원 이상을 금융권에서 빌린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비상장 회사라 직접 감독 대상이 아니지만 회사 매출과 대출 규모가 커 상황을 파악 중”이라며 “은행 여신 규모와 정상적인 대출인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남부지검도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멀쩡해 보이던 회사가 왜 갑자기 법정관리를 신청했는지 미스터리”라며 “박홍석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모두 잠적한 상태인데 아무래도 수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모뉴엘은 무역보험공사로부터 3000억원가량의 수출보증을 받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제품을 생산해 해외에 수출한 뒤 대금을 받아 갚아왔다. 또 무역보험공사 보증을 근거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은행에서 사고 통보를 받게 되면 은행에 대출금을 지급한 뒤 해외 수입업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모뉴엘의 허위 수출 의혹이 있어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덧붙였다. 관세청도 모뉴엘이 선적 서류를 조작했는지 등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기업의 몰락에 대해 벤처·가전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모뉴엘은 지난해 매출 1조2737억여원, 영업이익 1104억원을 기록했다. 2008년 739억원이었던 매출이 5년 만에 17배로 불어난 것이다. 미국·독일·일본·중국에 해외법인을 두고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벌었다. 감각적인 PC, 독자 기술로 개발한 로봇 청소기 등으로 대기업이 주도하는 가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2007년 세계가전박람회(CES)에서 모뉴엘의 홈시어터PC를 극찬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연말까지 50인치 TV를 내놓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심상치 않은 징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뉴엘 관계자는 “창업자인 원덕연 부사장이 회사 지분 94.7%를 가진 박 대표와 업무 영역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며 “원 부사장이 지난 7월 퇴사한 후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고 말했다.

투자자 피해도 우려된다. 모뉴엘은 비상장사이지만, 자회사 잘만테크는 코스닥 상장사다. 개인 지분이 40%에 육박한다. 잘만테크 주가는 22일 하한가(1285원)를 기록했다. 장흥순(전 벤처기업협회장) 블루카이트 대표는 “벤처는 성공한 다음 다른 분야로 진출하거나 업을 확장할 때 항상 문제가 생긴다”며 “경영자의 자질과 내부 경영시스템이 준비되지 않고서는 성공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소아·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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