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해주 동중…민족혼 심어 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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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해방 전 일제하에서 나는 5년제인 해주 동중을 나왔다.
비록 일본인들이 세운 학교였지만 당시 이 학교의 시설은 현대시절을 갖춘 요즘의 학교보다는 월등했다.
4만여평으로 짐작되는 넓은 운동장은 아름드리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어 운동을 하다 지친 우리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어주곤 했다.
학교에는 이밖에도 유도장·무도장·수영장·승마장·배구장·농구장 등 학생들이 체력단련을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시설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전교생 5백명의 절반쯤을 수용하던 기숙사는 학습 의욕이 저절로 우러날 만큼 아늑했다.
30여명 남짓한 교사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지만 고광만(전문교부 차관) 거상집 교수 등 한국인도 2∼3명이 있어 학생들이 민족혼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처럼 좋은 시절과 훌륭한 선생님들 덕에 모교에서는 김덕보씨(전 TBC 사장) 안경모씨(산업 기지개발공사 사장) 김유탁씨(전 국회의원) 등 사회에 공헌을 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해마다 5월이면 전교생이 해주에서 개성까지 70㎞에 달하는 먼 거리를 밤새워 행군하던 기억이 새롭다.
5년 동안 전 코스를 내 발로 끝까지 걸은 것은 두 차례뿐이었지만 그때 받은 기념 메달은 학창시절에나 가질 수 있었던 낭만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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