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관』등은 평가 기준 애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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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82학년도 졸업생부터 적용될「교수의 학생추천서」는 대학생활에서 교수-학생관계를 상당히 바꿔놓을 것 같다. 교수는 구체적으로 6개 항목에 걸쳐 학생의 품성을 5단계로 평가해야하고, 학생은 그 교수의 평가서에 따라 졸업 후 진로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도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강의를 통한 학점수수(수수)만으로 끝날 수는 없게 됐다.
문교부가 20일 전국대학 학생처(과)장회의를 통해 새학기부터 전 학생을 대상으로 기록하도록 시달한 「추천서」모델은 학생의 인격을 평가하도록 돼 있다. 그 가운데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도록 돼 있는「수상」「징계」「학내외활동」은 그런 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사항이지만 5단계로 평가될「판단력」「창의력」「지도력」「책임감」「인간관계」「국가관」등 6개 항목은 형식적 접촉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내면적 품성이어서 평가자인 교수와 평가받는 학생사이에는 새로운 역학관계가 생겨날 것 같다.
문교부와 각 대학 학생처 관계자는 이에 따라 교수-학생접촉이 보다 활발해지고, 나아가서는 교수와 대학의 권위도 확립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강의실에서 끝나고 있는 교수-학생관계가 전인(전인)관계로 전환돼야한다는 것은 이 제도의 전제이기도 하다. 학생의 전모를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를 맡게 될 교수들도 현재의 여건에서 그 같은 관계정립에 학생들을 과연 얼마만큼 능동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느냐에는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추천서가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는 선진외국의 경우 한 교수가 7∼8명의 학생을 맡아 연구실은 물론, 완벽한 기숙사제도 등으로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관찰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생비율은 4O에 가깝고 자연스런 접촉 기회가 강의실외에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여건에서 쓰일 추천서를 얼마만큼 신뢰하고 납득하느냐에 있다. 그 정도에 따라 교수-학생관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학생이 승복하지 않는 평가나 사회가 불신하는 추천일 때는 오히려 교수는 물론 대학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
당장 내년부터 공무원임용에는 추천서 반영이 의무화되고 국영기업과 일반기업도 곧 이에 따를 전망이어서 학생의 입장에서 교수의 추천서는 일생에 관계되는 중요성을 갖게 돼 무엇보다 평가의 정확성과 공정성이 요청된다. 문교부가 제시한 모델은 그런 점에서 보면 우선 6개 항목의 행동특성에 구체성이 없고, 5단계의 평가기준이 모호하다는 흠이 없지 않다.
평가해야 할 대상인 행동특성이 추상적으로 규정되고, 평가의 척도가 엄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령 「국가관」의 경우 어떤 교수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국가를 위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종류에 따라 각각의 독특한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다양한 길을 가게 될 학생에게 일정한 방법을 강요할 경우 자칫 부작용조차 우려된다. 자신의 국가관이 부인 당하고도 승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추천서를 받는 측에서도 이 같은 점을 감안, 당분간은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이를 반영할 전망이다. 기관의 성격에 따라 6개 항목 가운데 일부를 반영하거나, 「종합의견」 또는 「상벌」「학내외활동」 등 객관성 있는 서술부분만을 우선 반영할 가능성도 있다. 받아들이는 측에서는 추천서가 선발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필요한 내용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을 때 그 반영률을 점차 높여갈 수 있고, 하나의 제도로 정착될 수 있다.
이 제도의 성패는 곧 평가의 정확성과 공정성에 달려있다.
객관적 근거가 제시될 정도의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는 이 제도를 보는 일반의 의혹의 눈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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