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청과물시장 한국계가 장악|구경하다 매맞고 직접 차려 9년만에 거래량 85% 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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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코리언·주」(Korean Jew).
뉴욕가의 한국청과상들을 두고 부르는 별명이다.
유대인들을 두고 지독스럽다는 투로 붙인 「주」라는 야유석인 별명이 한국인청과상들에게는 억척스럽게 부지런하고 강인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일종의 애칭이다.
그런 「코리언·주」들에 의해 지금 뉴욕 이민가의 역사는 새로운 장을 맞고 있다.
뉴욕 이민사에 막이 열린 이후 지금까지 주로 이탈리아·유대인들에 의해 뿌리깊게 지배되어 오던 청과상의 상권을 이제 한국인들이 장악, 정상의 자리를 굳힌 것이다.
거래규모가 꽤 큰 것이어서 이탈리아 마피아들까지도 조직의 손을 뻗칠 정도다.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어 정상공격을 시도한지 9년만에 정복한 고지지요. 밟히면 생명력이 더 강해지는 잡초처럼 강인한 의지로 맞섰읍니다남.』
일시 귀국한 「뉴욕한국인 청과상조회」회장 최재흥씨(42)가 전하는 현지교포들의 입지전적 체험담이다.
이곳의 한국인 청과상은 8백50여개소.
청과시장의 85%를 장악, 하루 매상고만도 1백30만∼1백50만 달러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환산, 10억원 안팎의 거액이 오가는 셈이다.
뉴욕거주 교포 8만명 중 1만5천여명 (총업원과 그 가족포함)의 생활이 달려있는 젓줄이기도 하다.
상조회는 바로 이들 상인들의 모임.
한 핏줄의 공동이익을 찾아 만들어진 것인만큼 그 빛깔도 핏빛 만큼이나 진하단다.
한국인 청과상의 역사는 눈물겨운 인종차별대우에서 그 연원을 찾는다.
『과일을 사기 위해 상점 앞에서 물건을 구경하다 어이없게 매를 맞은 교포가 한두명이 아니었습니다. 주로 흑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 같은 치욕적인 사건은 우리를 중국인으로 오인해서 빚어진 것인데 「치노(Chino)」라고 부르며 상점 앞에 나타나면 재수없다고 그랬지요. 돈을 주고도 과일·야채를 제대로 살 수 없었어요. 흑인들이 중국인들을 지독하게 싫어했던 것 같아요
백인으로 부터 받은 설움을 이들에게 쏟아 놓은 것일까.
그래서 시작된 청과상의 역사는 이제 겨우 길지 않은 기간인 9년을 헤아린다.
초창기에 7명 정도가 뜻을 모아 시작했던 것이 74년 이후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 오늘에 이르렀다.
『남미이민에 실패한 교포들·목사 때로는 피부빛깔이 다르다고 강의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들의 배신에 밀려난 교수들을 포함한 상류 지식인들까지도 이 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지요.』
한 가족이 달라붙어 적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장사인데다 자금회전이 빠르고 언어장벽에 큰 구애를 받지않아도 돼 많은 교포들이 이 장사에 손을 댄 것 같다는 설명이다.
교포들이 경영하는 청과상은 소매상이라고는 하지만 매장이 50∼1백평정도의 너비로 언뜻 우리나라 슈퍼마키트를 연상하면 된단다.
이들 청과상들은 이국땅에서나마 고향의 봄을 감상할 수 있도록 올해 뉴욕근교에 무궁화도 있고 밤나무도 있는 교포동산을 만들 계획이다.
글· 임수홍기자
사진· 장홍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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