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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문학 터치]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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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영상 매체를 향한(intended) 소설.

소설가 김탁환(37)씨가 요즘 '쏟아내는' 소설을 읽은 소감이다. 여기서 '쏟아낸다'고 쓴건 엄청난 작업량 때문이다. 그는 최근 십년간 소설 11편을 발표했다. 그것도 죄다 장편 전작이다. 오로지 창작에만 매달린 십년을 작가는 "얻은 것은 소설이요 잃은 것은 전부인 시기"라고 부른다.

작가는 역사추리소설이란 장르를 갖다붙였다. 시대 배경이 조선 정조 연간이고, 주요 등장인물이 소위 백탑파 서생, 그러니까 박지원.박제가.이덕무 등 실학자며,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아 그리 불렀을 터다.

하나 소설 속 캐릭터와 장면 구성은 영상 매체에 가깝다. 장면 전환은 재고 캐릭터는 펄펄 뛰논다. 능숙한 고어체와 절묘한 고사(故事)로 위장했지만 소설은 매우 모던하다. 요즘 인기라는 할리우드식 영어권 소설이 연상된다.

아무래도 작가는 애초 역사를 복원한다거나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배울 요량이 없는 듯하다. 작가는 반만년 국문학사를 손바닥 보듯 하는 조동일(서울대 국문학과)교수의 제자. 스승으로부터 문학사 곳곳에 이야기 재료가 산더미처럼 쟁여있음을 배웠으리라. 그 화수분을 숨겨놓고 감 빼먹듯 하나씩 입맛따라 요리하는 것이다.

신작 '열녀문의 비밀'(황금가지)이 나왔다. '백탑파, 그 두번째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소설은 '방각본 살인사건'(2003년)의 연장선에 있다. 연작에서 흥미로운 건 김진과 이명방이란 25살 동갑내기 캐릭터다. 소설 속 화자 이명방은 반듯하고 의협심 투철한 의금부 도사. 반면 김진은 셜록 홈즈와 제갈공명을 적당히 버무린 듯한 인물이다. 공명마냥 자못 신비롭지만, 홈즈처럼 밝은 눈을 지녔다(골초란 점도 비슷하다). 성격 판이한 두 주인공을 내세운 '투캅스'같은 영화를 '버디 무비(Buddy Movie)'라고 하니 이 소설은 '버디 픽션'이라 불릴 만하다.

김탁환 소설에 눈길이 머무는 이유는 애당초 영상 매체를 고려해 소설을 시작한 '장르 배반적' 글쓰기에 있다. 하여 그를 향한 문단의 시선은 그닥 곱지 않다. 그러나 그가 '쏟아내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거짓 열녀 수사가 소설의 얼개다. 거기에 기독교.북학파.객주 등 시대 상황이 얹힌다. 마지막으로 하나. 영화 '식스 센스'급의 막판 대반전이 기다린다. 아, 말하고 싶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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