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김일성 도끼만행, 김정일 잠수함 침투 사과 … 김정은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북한이 과연 사과를 할까요. 5·24조치 해제 목소리가 높아진 요즘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남북한이 ‘5·24 장애물 뛰어넘기’란 2인3각 경기를 완주하려면 꼭 넘어야 할 게 천안함 폭침도발 사과이기 때문이죠. 양측은 머지않아 이를 회담 테이블에 올려야 하는 ‘진실의 순간’에 맞닥뜨릴 겁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주 통일준비위 회의에서 “5·24 문제도 남북 당국이 만나서 책임있는 자세로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눠 풀어나가야 한다”고 운을 뗐습니다. 대북제재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경협기업뿐 아니라 여권 내에서까지 해제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화답으로 해석됐죠. 8월 통준위 첫 회의 때 이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통일부 장관이 손사래를 친 것과는 달라진 분위기입니다.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일행의 이달 초 깜짝방문과 고위 접촉 재개 합의도 힘을 보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대화’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판문점 군사접촉의 전말을 놓고 요며칠 남북당국이 벌인 진실공방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은 남북관계에도 딱 들어맞습니다. 대화를 통한 해결이란 화두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죠. 그런데 돋보기로 들여다 보면 녹록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5·24조치를 해제하려면 북한 당국의 시인, 사과와 재발방지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5·24조치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도발에 따른 대응차원에서 나왔습니다. 4년 전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46명의 해군 장병들이 희생당한 데 따른 응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알맹이가 그리 튼실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고, ▶남북교역 중단 ▶대북 신규투자 금지 ▶대북지원 보류 ▶북한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차단 등을 담았는데요. 제재 효과가 의문입니다. 오히려 대북경협사업에 참여한 우리 기업들의 발만 옥죈다는 불만도 적지 않습니다. 제재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자 이명박 정부는 “연간 3억 달러 이상의 고통이 북한에 가해지고있다”고 주장한 일도 있습니다. 사실 국제 경제제재가 제대로 약발을 발휘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북한은 중국이란 비상구가 있으니 더욱 그렇겠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5·24는 제재가 아닌 자해(自害)’란 자조까지 등장한 겁니다.

 북한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사과라는 고도의 정치행위를 실행에 옮겼는지 짚어봐야겠습니다.

 대남도발 사과는 김일성이 내각 수상이던 1972년 5월 처음 나왔는데요. 당시 7·4 남북공동성명 조율 차 극비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김일성은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해 사과합니다. “나도 모르게 좌경맹동분자들에 의해 야기된 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68년 1·21사태 때 김신조 등 특수부대원 31명을 내려보내 박 대통령을 시해하려다 실패하고, 시민들을 살상한 데 대한 4년 만의 유감표명이었던 겁니다. 김일성은 76년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도 물러섭니다. 가지치기 작업 중이던 미군 2명을 도끼로 무참히 살해하자, 미군이 항공모함과 전폭기를 동원한 응징에 나섰죠. 김일성은 사흘 만에 군사정전위 북측 수석대표 명의로 ‘유감’을 표한 겁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6년 9월 강릉에 침투한 북한 잠수함 사건으로 사과해야 했습니다.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이 담겼죠. 그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에게 또 한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에 대해 “참으로 불행한 일로, 솔직히 사과하고 싶다”고 한 겁니다. “관계자를 처벌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아버지 김일성의 청와대 습격 미수 사과 때와 판박이입니다.

 이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차례입니다. 올해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4주년인데요. 그가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를 통해 5·24란 굴레를 벗고 남북관계 진전과 대외 개선에 나설 용단을 내릴지가 관건입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1·21사태 4년 만에 대북특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듯이 말이죠.

 사실 천안함·연평도 도발은 김정일 때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도 김정은에게 시선이 쏠리는 건 후계자 시절 그의 작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후계자였던 시절 아웅산 폭탄테러(83년, 각료 등 17명 사망)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87년, 115명 사망)을 저절렀던 것처럼 말입니다. 김정일은 끝내 두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만 사과한다는 카드를 꺼냈죠. 김정은은 할아버지의 ‘통 큰 사과’를 따를까요, 아니면 ‘사과 불가’란 길을 택할까요. 지켜볼 대목입니다.

 북한의 사과에는 공통된 코드가 있습니다. 그건 힘의 논리에 굴복하는 철저한 현실주의적 접근이란 겁니다. 76년 8월 판문점 도발 땐 미국의 무력응징을 초래했죠. 평양 시민 30만 명을 소개(疏開)해야 할 정도로 정권 몰락의 위기가 닥치자 서둘러 사과했습니다. 대화국면이 절실할 때도 북한은 사과합니다.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은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얼버무린 뒤 재발 안 되게 서로 노력하자는 식으로 매듭짓는 게 북한식 사과법”이라고 분석합니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한은 비밀접촉에서 ‘서해상에서 그동안 발생한 모든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천안함 해법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북한은 남북 양측의 책임을 다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우리는 북한의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입니다. 남북관계에서 종종 등장하는, ‘상호 편리한 해석’이 가능한 합의문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의 일방폭로로 비밀이 깨지면서 파국을 맞았죠.

 지금 우리에겐 북한을 압박해서 얻을 득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5·24해제와 북한 사과를 둘러싼 우리 내부의 논란도 횡행합니다. 그 틈을 북한은 노리는 형국이죠. 평양 당국의 ‘사과’라는 정거장을 거치지 않고는 5·24조치 해제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긴 힘든 국면인데요. 북한은 정말 사과할 수 있을까요.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