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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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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마커스 니스펠 주연 : 제시카 비엘, 에릭 발포 장르 : 공포 등급 : 18세 홈페이지 : www.texaskiller.co.kr 20자평 : 무시무시하게 되살아난 미국판 '살인의 추억'

옛날 공포영화에는 흔히 '임산부.노약자.심장질환자 관람 자제'를 요청하는 홍보 문구가 따라붙었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란 건조한 제목이 붙은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임산부 '절대 불가'에 해당하는 호러물이다.

전기톱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듯 화면은 섬뜩함 그 자체다. '부릉~ 부릉' 굉음을 내는 전기톱 소리만 들어도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때론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웬만한 강심장도 오금이 저려온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공포는 사건의 '무예측성'에서 비롯한다. 죽어야 할 이유도, 또 엇비슷한 원한도 없이 그저 시신이 하나 둘 쌓여간다. 무방비 상태의 사람에게 묵직한 해머를 단숨에 내리찍고, 도축용 대형 갈고리에 생사람을 꽂아 걸고, 예의 전기톱으로 사지를 절단하고 등등. 스크린 전체가 검붉은 피로 물든다. 당연히 끊이지 않는 비명과 괴성….

같은 호러영화라도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유별나다. '공포를 위한 공포'에 주력한다. 어둡고 음산한 밤하늘을 밝히는 보름달이 신경세포를 자극하고, 연속되는 핏빛 살인극이 모세혈관을 긴장시킨다.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기 감정에만 매달리는 신경질환인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2003년) 은 전설적 공포영화로 기억되는 '텍사스 살인광'(1974년, 토브 후퍼 감독)을 리메이크했다. 단돈 15만 달러를 들여 무려 1억 달러를 벌어들였던 원작의 무게를 의식한 듯, 아니 더 끔찍한 장면을 빚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작용한 듯, 신작은 '더 깊고, 더 높은 공포'를 향해 줄달음을 친다. 1973년 미국 텍사스주 트래비스 카운티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33명 연쇄살인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전대미문의 이 엽기적 살육극은 지금도 미제(未濟) 사건으로 남아 있다.

예컨대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랄까. 하지만 색채는 180도 다르다. 살인사건을 파고드는 수사관의 애환에 초점을 맞춘 '살인의 추억'과 달리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의 관심은 오직 하나, 관객을 무한공포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잠시 쉬어가는 유머도, 그리고 숨을 돌리는 웃음도 필요없다. 남는 건 딱딱하게 굳은 신경세포뿐이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는 원작처럼 다섯 명의 젊은이가 등장한다. 그들이 록 콘서트장에 가던 중 우연히 차에 태워준 한 소녀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시작해 97분 내내 '쫓고 쫓기는' 사투가 이어진다. 연쇄살인의 배경을 드러내는 듯 원작에선 없었던 살인마 가족의 불행한 가족사를 잠깐 끼워넣으며 드라마를 강화한 측면도 있으나,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시쳇말로 무식하고, 무자비한 공포가 출렁인다. 원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여성 캐릭터를 더욱 강인한 '전사' 비슷하게 변형시킨 대목도 눈에 띈다. 심약자 절대 불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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