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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개입…"적당히"써주면 부작용|「교수추천 세미나」에서 본 문제점·외국의 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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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전국대학 학생처장협의회(회장 박영식 연세대학생처장)는 5일 연세대에서 「교수의 학생추전제 개선을 위한 세미나」를 갖고 8명의 학생처·과장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소위원회는 앞으로 교수추천제의 학생평가기준, 선발에서의 반영비율과 실시시기 등 구체적 절차를 마련해 이를 문교부에 건의한다. 소위원회 구성에 앞서 열린 세미나에는 34개 종합대 학생처장과 기업체 관계자 등이 참석, 교수의 학생 추천제 실태와 외국의 예, 그 필요성과 실시에 따른 문제점 등을 논의했다.

<필요성>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의 대부분이 지금까지 페이퍼 테스트에 의한 지식평가만으로 「적격자」를 선발해왔다. 현행 임용·취업제도는 성실성이나 책임감 등 그 일에서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데 보다 중요한 평가자료를 외면하고 있다.
연세대 박영직 학생처장은 『임용자나 고용자 측의 이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학생에게 성공 가능성이 높은 진로지도를 하기 위해서도 교수 추천제도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태>
현재도 교수추천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졸업증명서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졸업생을 임용 또는 채용하는 기관은 대부분 성적증명서와 교수추천서를 요구해 놓고도 선발은 독자적인 시험결과로 결정하고 있다.
즉 대학은 바깥으로부터 불신 당하고있는 셈이다. 교수의 추천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형식만 갖춘 부실추천서가 범람하고 누구나 좋다는 식의 무책임한 추천서가 많아 사회는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물산 송직현 총무부장은 『기업으로서도 유능하고 직업관이 투철한 인재확보를 위해 실력과 적성을 갖춘 사람을 추천 받고 싶어하지만 학교격차나 추천서의 모호성 때문에 추천서는 졸업예정자 확인에 그치고 자체평가를 통해 신입사원을 선발한다』고 했다.
서울대 조용섭 학생처장은『외국에 학생을 내 보내면서도 추천을 받아야할 학생이 자천문안을 써오면 사인만 하는 사래가 많다』고 지척, 『제자들의 취직을 많이 시키면 그만큼 인기가 올라가는데 추천서를 거절하거나 결점을 지적하는 내용을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받아들이는 쪽에서 정직한 추천서의 필요성을 느껴 취사선택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학생추천에 교수는 객관성을 잃지 않아야 실마리는 풀릴 것 같다.
이대 조정호 학생처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이대는 대학원 진학에 교수추천서를 필수요건으로 해놓고도 합격과 불합격에는 전혀 참고하지 않는다. 어떤 교수도 학문을 계속할 사람이 못된다는 추천서는 쓰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판별기능을 잃고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추천과 충실한 반영이 쌍방에서 병행될 때 실효 있는 추천제도가 정착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외국의 경우처럼 우리의 대학에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추천서를 쓰지 못하고 있지만 먼저 사회가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면 정실추천서 남발풍토도 앞당겨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추천서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찾기로 했다.

<외국의 도>
미·영·독·일 등 선진외국의 경우 교수의 추천은 학생의 진로선택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취업이나 진학에 교수추천서·성적증명으로 1차 선발한 뒤 인터뷰를 하게되고 3개 요소를 종합, 최종 선발하는 제도가 보편화 돼 있다. 유럽에서는 더욱 철저해 교수의 추천이 학생의 장래를 좌우할 정도.
▲독일(김병옥·연대교수의 말)=사회진출에는 물론이고 대학 안에서도 장학금 등 혜택에는 교수의 추천서가 필수적이다. 추천서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라고 할만하다. 반드시 그것도 지도교수의 것이어야 한다. 총·학장이나 학과장추천서는 통용이 되지 앉는다.
추천내용 또한 일종의 전문지식과 업적에 대한 「감정증명서」성격을 갖는다. 전문성의 근거가 제시되고 그 분야의 실적이 추천서 한장으로 증명된다. 그 다음으로는 정치적 사상이나 사학적 태도가 강조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영국(윤경자·건국대교수)=철저한 비밀과 상세한 내용이 특징이다. 추천서작성을 위한 학생의 인성기록카드는 지도교수가 직접 보관하고 추천 의뢰자 외에는 누구도 볼 수 없다. 카드에는 학생의 「전부」가 기록된다.
한 교수가 8, 9명 정도의 학생을 맡는 철저한 튜터링 시스팀(Tutoring System)이어서 접촉빈도도 많지만 교수는 강의실에서 뿐 아니라 술집, 자신의 가정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학생과 같이 있고 학생주변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이같은 기록이 가능하다.
전통적 개인교수 시스팀을 지금까지도 고수하고있는 점이 영국대학의 특징중의 하나다. 그러면서도 추천서 내용에 전혀 정실이 개입되지 않는 것은 놀랄만하다. 각종 장학금신청을 했다가 교수추천서가 지나치게 정확해 대상에서 탈락되는 일은 흔히 있다.
▲일본(금동신·단국대교수)=교수가 명예를 걸고 학생을 추천하는 것이 특징. 정실추천을 한번하고 나면 그 교수의 추천서는 통용이 되지 않고 「체면」을 잃게된다. 기록을 근거로 한 추천이 아니면서도 교수는 양심을 걸고 사회는 권위를 인정한다.
그래서 주관적 추천서도 없지 않다. 교수가 한번 잘못 보면 그 학생의 장래는 학교를 옮기지 않는 한 거의 막히는 일도 있다. 학생이 교수에게 절대 복종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점>
외국의 경우 일반화돼있긴 하지만 우리의 대학여건이나 사회의 수용태세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우선 교수-학생비율이 우리의 경우는 높다. 지난해 정원증원이후 거의 1대 40정도에 이르고 있다. 지도교수가 그들 전부를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친밀한 접촉이나 충분한 대화가 힘든 상태에서 쓰게될 추천서가 권위를 인정받을 만큼 충실할 것인지 우려된다. 충분한 관찰과 정확한 평가가 전제돼야할 추천서가 자칫 형식이 앞질러 비뚤어진 내용을 담게된다면 학생은 물론, 받는 쪽까지 2중 피해자를 낼 우려도 없지 않다.
이같은 여건을 보완할 어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타당성 있는 구체적 기준이 이 제도시행에서 성패의 열쇠가 될 것은 틀림없다. 우선은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만이 이 제도시행을 보는 학생들의 의혹의 눈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처장 협의회 세미나는 학내 외의 여건이 갖춰지진 않았지만 먼저 대학졸업자 채용이나 진학에 교수추천서의 결정적 반영이 제도화된다면 교수-학생접촉이 활발해지고 대학의 권위확립에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문교부 관계자도 같은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 안에서의 교수-학생관계가 소원하다면 그것은 교수에게 반드시 권한이 없어서라기보다 오히려 분방한 학생들의 에너지를 수용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무력감 때문이라고 말하는 교수도 많다.
교수의 학생추천제도화가 대학의 권위확립에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교수-학생간에 학문적 접촉은 물론 격의 없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조성이 앞서야할 것 같다.
자칫 알맹이 없는 추천서가 힘만 쓰게되면 오히려 대학의 권위를 다시 한번 실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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