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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의 감촉만으로 차체 이음새 0.1㎜의 차이를 잡아낸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올해 8월 4일 일본 규슈(九州)의 도요타 미야타(宮田) 공장에서 한 종업원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렉서스 NX에 대한 최종 검사를 하고 있다. 도요타는 이 차를 일본 국내에서 대당 428만 엔에 팔고 있다. [블룸버그]
도요타 규슈 트레이닝센터의 모습(사진 위), 도요타 공장 종업원이 완성차의 마무리를 정밀하게 하는 장면(아래). [사진 한국토요타자동차]

지난달 18일, 일본 규슈(九州)에 자리한 도요타 미야타(宮田) 공장의 최종 검사라인. 한 작업자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완성된 차의 표면을 정성껏 쓰다듬고 있다. “차체 패널 간 간격을 확인하고 있는 거예요. 0.1㎜와 0.2㎜까진 각각 S와 B등급을 매겨 통과시키지요. C등급은 수정을 위해 생산라인으로 돌려보냅니다. 100대 중 한 대 정도 되지요.” 공장 홍보 담당자의 설명이다.

시각·촉각만으로 0.1㎜의 간격을 구분해내는 사람들. 이 공장의 자랑 ‘다쿠미(匠)’가 길러낸 숙련공이다. 다쿠미는 손으로 물건 만드는 장인을 뜻하는 일본어. 체계적 훈련을 통해 소수만 육성한다. 가령 미야타 공장 전 직원 7700여 명 중 다쿠미는 22명에 불과하다. 또 1991년 2월 미야타 공장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다쿠미로 불렸던 이들도 40여 명뿐이다.

미야타 공장은 본사(도요타시) 지구, 도호쿠(東北) 지구와 더불어 일본 내 도요타 3대 생산 거점의 한 곳이다. 후쿠오카(福岡)의 하카타(博多) 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단지는 차를 조립하는 미야타, 엔진을 만드는 간다(田), 하이브리드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고쿠라(小倉) 등 3개 공장으로 구성된다. 도요타자동차 계열사인 도요타자동차 규슈가 운영하고 있다.

도요타는 렉서스 생산 공정에 다쿠미를 적극 활용 중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다운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미야타 공장은 전체 렉서스 생산의 90%를 소화한다. 연간 생산능력은 43만 대. 하루 1750대꼴이다. 핵심 차종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NX. 생산물량의 52%를 차지한다. 그 밖에 CT와 RX, ES 등을 만든다. 한국에서 파는 렉서스도 여기에서 온다.

렉서스의 완성차 검사 기준은 다른 도요타 차종보다 한층 까다롭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렉서스는 한 대당 5000가지 항목에 걸쳐 검사를 받는다. 아울러 모든 렉서스는 험로 주행시험을 마친 뒤 출고된다. 전수 검사다. 이날에도 공장 바로 옆 주행시험장엔 쉴 새 없이 차가 드나들었다.

시험장엔 ‘이음로’라는 길이 있다. 이상한 음이 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한 도로다. 이음로의 길이는 300m로 별로 길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지형으로 구성돼 있다. 울퉁불퉁한 포장도로 65m, 맨홀이 움푹 파인 도로 13m, 쩍쩍 갈라진 아스팔트 65m, 벨지안 도로(유럽의 돌길) 150m, 속도방지턱이 이어진 도로 27m로 구성된다. 다쿠미에게 3개월간 집중 교육받은 4명의 직원이 하루 800여 대의 렉서스를 몰고 이 코스를 시속 40㎞로 달린다.

다쿠미가 직급을 뜻하는 건 아니다. 공식 명칭도 아니다. 특별한 기술과 경험을 지닌 직원을 뜻하는 개념적 호칭이다. 지금 규슈 공장에서 활동 중인 다쿠미 22명은 각자 직급이 따로 있다. 사내에서는 이들을 ‘렉서스 기능 전문가(LX)’라고 부른다. 자동차 생산의 주요 공정을 모두 경험한 20년차 이상의 직원들로 구성된다. 나이는 50대가 주를 이룬다.

장인 돼도 직급·봉급 변화 없어
다쿠미는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동력 착취 등 부정적 측면을 제거한 도제 시스템이다. 충분한 경력을 쌓은 대상자들은 일주일간 특별교육을 받은 뒤 다쿠미로 인증받는다. 자격은 2년 동안 유지된다. 다쿠미가 돼도 직급과 급여엔 변화가 없다. 명예직이다. 업무는 바뀐다. 일부는 최종 검사처럼 품질을 책임질 작업에 일반 직원과 섞여 일한다.

다쿠미는 자신의 노하우를 다른 직원들에게 전수한다. 조립과 도장, 바느질 등 각자 전문영역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현장을 감독한다. 규슈 공장에서는 ‘다쿠미 활동’이라고 부른다. 한국토요타자동차 홍보부의 김성환 차장은 “표준작업의 철저한 교육을 통해 작업자 전원이 명확한 기준과 목표를 갖고 고품질 생산기능을 연마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미야타 공장의 다쿠미 가운데 12명은 바느질(스티칭) 전문이다. 이들은 NX 대시보드의 우레탄 부위에 바느질하는 작업과 교육, 검사를 맡고 있다. 가죽과 달리 우레탄은 가지런히 펴서 작업할 수 없다. 3차원의 입체 형상을 따라 오르내리며 재봉해야 한다. 손발을 정교하게 놀려 바느질의 속도와 모양을 조절하는 게 핵심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12명의 다쿠미는 3개월 동안 집중 교육과 훈련을 거쳐 실제 바느질 작업에 투입됐다. 선발 조건은 깐깐하다. 테스트의 시작은 종이접기다. 90초 안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손으로 종이를 접어 고양이를 만들어야 한다. 바느질 다쿠미들은 10단계의 체계적 바느질 교육 프로그램도 고안했다. 자신들을 대체할 솜씨 갖춘 직원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미야타 공장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트레이닝센터가 있다. 미야타 공장에서는 다쿠미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3~4년 단위로 직책이 오를 때마다 재교육을 받는다. 센터는 2005년 3월 미야타 제2공장과 함께 문을 열었다. 갑자기 늘어난 직원을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다. 지난해는 9000여 명을 교육시켰다. 하루 37명꼴이다.

입구 양쪽엔 단계별 기능자격을 거머쥔 직원 이름을 빼곡히 걸어 놨다. 도요타는 근속연수에 따라 ‘MPS(맨파워 스텝업)’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기 위한 사내 검정제도다. 이날 만난 스기야마 신지(杉山新治) 생산부문 총괄 전무는 “제조는 결국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라는 창업주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의 고집이 투영된 결과”라고 소개했다.

도요타는 낭비와 기다림 없는 생산방식을 전 세계 자동차 업계로 전파시킨 주인공. 이른바 ‘도요타 생산방식(TPS)’이다. 수없이 회자된 도요타의 슬로건, ‘마른 수건도 짜라’는 궁극의 효율을 뜻했다. 그러나 고급차 업계의 후발주자인 렉서스는 효율만으로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다. 가치 이상의 가격을 소비자에게 납득시킬 ‘스토리’가 필요했다.

특히 창업주의 손자이자 자동차 매니어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 취임 이후 이런 움직임에 가속이 붙었다. 사상 최대의 리콜, 대지진 등 갖은 악재도 위기의식을 부채질했다. 렉서스는 장인에 주목했다. 다쿠미 활동은 렉서스 주력 생산기지인 규슈 공장에서 2009년 처음 도입했다. 도요타 내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통용되던 장인을 제도화한 첫 시도였다.

세 명 뿐인 ‘렉서스마이스터’도 장인
도요타는 다쿠미의 존재를 좀처럼 외부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번 취재 때 인원을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렉서스 LS와 GS를 만드는 도요타시 인근의 다하라(田原) 공장에도 다쿠미 1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타 공장에서도 실제 다쿠미는 먼발치에서 한 명 봤을 뿐이었다. 한국토요타자동차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부됐다.

렉서스엔 또 다른 종류의 다쿠미가 있다. 신차 주행시험을 책임진 ‘렉서스 마이스터’다. 렉서스를 통틀어 단 세 명뿐이다. 다들 경험 많은 테스트 드라이버 출신이다. 이들은 실제 운전할 때의 ‘손맛’을 다듬는다. 또 언론 대상의 시승회에 참여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그들의 평가를 수집한다. 이들은 도요다 사장에게 주요 사안을 직접 보고할 만큼 회사의 신임이 두텁다.

렉서스 마이스터는 업무 특성상 훈련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스승이 직접 뽑은 제자와 꾸준히 호흡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010년 6월 23일 독일에서 렉서스 LFA를 시험 주행하다 BMW 3 시리즈와 정면충돌 사고로 사망한 나루세 히로무(成?弘)가 제1대 렉서스 마이스터였다. 그는 도요다 아키오 사장에게 운전을 가르친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규슈=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 ceo@roadt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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