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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터 민간까지 촘촘한 외국 안전관리 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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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하네다(羽田)공항에는 특수 훈련을 받은 잠수부들이 상주한다.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최정예 잠수요원으로 구성된 특수구난대다. 6개 조로 편성된 36명의 잠수부들은 24시간 대기 체제다. 평소엔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사고 신고가 접수되면 즉각 헬기나 소형제트기로 현장에 신속히 출동해 인명을 구한다. 신속한 초기 대응이 해난 구조의 핵심이라는 데 착안한 초동 대응 시스템이다. 바다를 무대로 하는 잠수부들이 공항 기지에 상주하는 이유다.

특수구난대를 지원하는 기동구난팀은 전국 9곳의 해상보안청 항공기지에 대기한다. 이같은 촘촘한 초동 대응 시스템 덕분에 지난해 신고가 접수된 해난사고의 인명구조율은 96%나 됐다.

일본은 1998년 총리 직속으로 위기관리감(監)을 설치해 모든 안전 관련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배치했다. 해난 사고와 자연재해 등 20개의 재난 종류별 상세 매뉴얼도 마련했다. 사고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ㆍ자위대ㆍ지방자치단체를 연결하는 지휘체계가 가동된다.

미국은 국토안보부 산하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위기관리를 총괄한다. 유형별 시스템을 갖춘 주(州) 정부가 현장 지휘권을 갖는다. 기능별 대응 시스템을 가진 FEMA는 관계 기관들과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낸다. FEMA는 수색·구조·구호와 각종 메시지 관리를 일원화했고, 미국 적십자사 같은 비정부기구(NGO)도 지휘라인에 통합해 관리한다. 2009년 1월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승객 150명을 태운 여객기가 불시착했을 때 뉴욕항만청이 구조선과 헬기를 총동원해 탑승자를 구조했고 28개 연방 부처들은 공공기관·민간단체과 대책반을 구성해 주 정부를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반면 한국의 재난 컨트롤 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현장을 아는 전문가가 없고 행정 지시와 보고만 챙기는 조직이란 지적(연세대 조원철 교수)을 받는다.

영국 런던의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화재 경보를 구별할 줄 안다. 짧게 울리면 경보기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고, 길게 울리면 무조건 건물 밖으로 대피해야 한다. 이처럼 재난 관리를 정부에만 맡길 게 아니라 시민의식 수준을 높이고 개개인의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려대 최상옥(행정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고 때 만약 안산 단원고에 미리 훈련된 교사들이 있었다면 끝까지 방송만 믿고 있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재난 대처 역량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처럼 재난 대응시스템을 제대로 짜기 위해서는 평가 시스템을 바꾸자는 제안도 있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행정관리연구부장은 “안전을 우선 순위에 올려놓으려면 실적과 결과 위주의 평가 기준에서 벗어나 절차와 과정 위주로 바꿔야 한다"면서 "축구에서 골을 넣는 공격수 뿐 아니라 수비수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해줘야 국민 의식이 개선되고 사회안전시스템도 잘 구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진국에선 위기 대응 체계가 개개인의 일상 생활에 모세혈관처럼 스며들어있다.예컨대 중앙일보 도쿄지국 사무실에는 책상마다 ‘일하는 중 당신이 대지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제목의 ‘오피스 서바이벌 북’이 놓여있다. 대형 빌딩에 입주한 사무실 직원들을 위한 방재 안내서다. 22쪽에 걸쳐 삽화를 곁들여 구체적 행동 지침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도쿄에서는 수용 인원 300명 이상인 건물에 입주하면 사무실마다 한 명이 소방 방재관리자 자격을 따고 등록해야 한다. 도쿄소방서가 실시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필기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소화기 사용법과 대피 유도 등 실습도 거쳐야 한다. 운전면허를 갱신하듯이 5년마다 한 번씩 갱신 교육도 받는다.

꽤 불편할 수도 있지만 안전은 이처럼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진 시민 의식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무장한 개인·기업·사회·국가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 선진국의 안전인 셈이다.

워싱턴ㆍ도쿄=박승희ㆍ김현기 특파원, 박현영·김혜미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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