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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매번 새 셰프가 새 장소서 '실험 요리' … 회원들 '새 맛' 즐긴 후 점수 매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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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26일 뉴욕 맨해튼의 뉴욕대(NYU) 근처 한 지하 강당. 뉴요커 120명이 색다른 외식에 도전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는 소셜다이닝 ‘디너랩(Dinner Lab)’ 회원들이다. 낯선 음식에 대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미식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저녁(Dinner)’과 ‘실험실(Laboratory)’의 합친 말인 디너랩은 2년 전 조지아대 학생이던 브라이언 보다닉(29·사진)이 처음 만들어낸 팝업 레스토랑이다. 유명 셰프가 이날 하루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코스 음식을 창고·강당 등 매번 다른 장소에서 맛본 다음 냉정하게 평가한다. 디너랩 측은 회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이벤트 당일 저녁까지 메뉴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디너랩은 현재 뉴욕·샌프란시스코·워싱턴·시카고 등 미국 주요 20개 도시에서 매년 1500회 이상 열리고 있다. 175달러(약 19만원)의 연회비를 내야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으며, 한 번 식사할 때마다 50~80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저렴한 가격이 아니지만 인기가 많아 디너랩에 가입하려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놔야 한다. 미국 전역에 1만2000명의 회원이 디너랩의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디너랩에 대해 “미국인들의 음식문화에 고정관념을 깨며 새로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디너랩 이벤트에서 셰프가 저녁 메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저녁은 맨해튼의 최고급 일식 레스토랑 ‘노부’의 수석 주방장인 벤 오쇼가 준비했다. 그는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참가자들에게 요리 컨셉트를 설명했다. 한 달 전부터 메뉴를 구상했다는 오쇼는 태국식 양념을 곁들인 닭의 간 요리, 참깨드레싱을 올린 표고버섯, 일본식 떡 등 여섯 가지 코스 요리를 선보였다. 회원들은 행사 참석 전 e메일로 자신이 먹지 못하는 식재료 등을 상세하게 써내야 한다. 이날 참석한 20여 명의 채식주의자들에겐 닭 대신 두부 요리가 제공됐다.

 각 테이블의 포크·나이프·그릇 옆에 피드백 카드와 연필이 있다. 사람들은 매코스 음식마다 맛, 창의성, 다시 주문할 의사 등을 항목별로 각각 1~5점씩 매긴다. 깐깐한 뉴요커들은 촌철살인의 평도 내놓는다. 친구 세 명과 디너랩을 찾은 대학생 에이미 마야는 “빵도, 간 요리도 충분히 더 익혀야 할 것 같다”며 ‘상품성(Restaurant Worthy)’ 항목에 ‘no’라고 체크했다.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있던 50대 프레드 로저는 “이 과카몰리(멕시칸 요리)는 묽지만 계속 손이 간다”며 ‘맛(taste)’ 항목에 만점을 줬다.

 회원들은 디너랩을 사교의 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식사 자리에 세 번째 참석한다는 한나 보시안은 “색다른 음식을 맛보는 재미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앉아 음식과 뉴욕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친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날 식사는 저녁 8시부터 시작해 두 시간 안에 끝났지만 대부분의 참석자는 자정까지도 식당을 떠나지 않았다.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보다닉은 이민 가정이 많은 뉴욕에서 자랐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 집에서 세계 각국 음식을 맛본 추억을 되살려 디너랩을 세웠다. 보다닉은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장소에서 낯선 음식을 맛보는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창업 의도를 설명했다. 셰프를 선정하는 기준은 까다롭다. 그는 “요리 실력이 뛰어나야 하는 건 당연하고, 흥미로운 사연이 있는 ‘진짜 음식’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셰프의 실험정신을 가장 높게 산다는 뜻이다.

 하룻밤의 이벤트를 기획하기 위해선 최소 몇 달은 걸린다. 매번 새로운 셰프를 섭외해야 할뿐더러 참신한 음식 메뉴를 선정하고 음식 컨셉트에 맞는 장소를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디너랩은 뉴올리언스 본사의 50명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200명의 직원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부터 캐나다 등 해외 진출도 구상 중이다.

 보다닉은 창립 2년 만에 회원 1만2000명을 확보한 비결로 회원들의 열정적인 피드백을 꼽았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인은 자신들이 내놓은 전망대로 현실이 흘러갈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디너랩의 생각은 그와 정반대”라며 “‘우리는 항상 틀렸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회원들의 의견·대화에 늘 귀 기울이고 이를 반영해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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