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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의 지혜로움이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남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아들을 가진 나의 친구가 있다. 그 아들아이는 가정환경은 물론학교성적·글짓기·미술과 같은 특기까지도 모두 뛰어날 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도가 지극하고 남의 웃어른에게 늘 공손한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다.
누구나 그 친구를 보면 아들을 그렇게 잘 키우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말하게 되고, 또 친구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으레『지금까지는 그렇지만 더 두고 보아야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한번은 아들의 일로 잠 한숨을 못 잤다면서 수척한 얼굴로 찾아왔다. 고1밖에 되지 않은 아들아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들아이는 어머니에게 자기 친구들도 모두 여자친구가 있으며 부모의 허락을 받고 서로의 집을 왕래하고 있는데, 자기도 이 여자친구와 한 달에 한두번씩 집을 방문하여 사귀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모법생은 남녀교제도 안해야 하는 것인양 생각할 때가 많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어릴 때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은 우리처럼 화장실가시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역사를 빚낸 동·서양의 성인들이 여자 문제를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의식 속에 막연하게나마 그렇게되기를 바라는 심리상태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성인이나 모범생이나 또는 학생의 존경을 받는 스승까지도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만나도록 조물주는 창조, 섭리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문제를 외면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외면, 도피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 조처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새를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 생각된다.
지난가을이래 우리의 눈과 귀를 그처럼 놀라게 했던 여대생 P양의 무참한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젊은이들의 남녀 교제의 문제들은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면 누구나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에 납덩이보다 더 무겁게 눌려와 닿는 느낌을 갖게 할 것이다.
이 소식에 접하는 부모들마다 혀끝을 차면서『머리 큰 젊은이들이 부모나 어른의 말을 들어야지』 『젊은이들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이건 더 말할 것이 못된다. 그대로 접어 두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혹은 부모세대의 낡은 윤리관이 오늘의 젊은이에게는 고루하고 맞지 않는데도 새 시대에 맞는 새 윤리를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어른과 젊은이들에게 한가지만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맹자와 같은 대철인도 청년시절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판단이 생의 경험이 많은 노련한 어머니의 판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곧 자신을 책망한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날 맹자가 아내의 방에 불쑥 들어갔다가 걸터앉아 있는 아내를 보고는 크게 실망하여 그의 어머니에게 아내가 무례하므로 버려야겠다고 말했다.
예의염치에 관하여 맹자를 따를 자가 누가 있을까. 그의 판단은 당당했다.
그러나 맹모는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아들에게『그것은 네가 무례한 것이지 아내가 무례한 것이 아니다. 예기에 문에 들어갈 때나 당에 오르려 할 때는 꼭 인기척을 하고 방에 들어갈 때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라 하지 않았더냐. 이건 남이 몸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을 때를 엄습하지 말라는 뜻인데 너는 아내의 사처에 인기척하지 않고 들어가 아내의 걸터앉은 것을 보았으니 네가 무례한 것이 아니냐.』
맹모의 현철함이 오늘의 우리에게 없음을 ?하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맹자 되기만을 기대한다. 맹자도 평범한 젊은이였으며, 학문에 정진하던 청년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을 겸손하고 참되게 받아들인 젊은이였다.
그가 대 철인이 된 것은 바로 이점에 있는 것이다.
누가 내 아들이 맹자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까.
▲1959년 서울대학교문리대 사학과 졸업▲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세종대학 역사학과교수 ▲현재성신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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