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의 통금〃도 풀렸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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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며칠동안 감기를 앓고 났더니 낮엔 코피까지 쏟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몸이 늘어진다. 잠자리에 누워 기지개를 켜본다.
온 몸으로 피곤함이, 그러면서도 하루가 무사히 끝나고 있다는 안도감과 포만감 같은 것이 감미롭게 퍼진다.
그런데 기지개 끝을 이으며 잊었던 듯 다시 살아나는 것, 벌써 새해가 2주일을 넘어섰구나-. 별안간 틈입자처럼 허무가 엄습해온다.
참 열심히 살아왔고, 실상 감기 정도도 아플 새 없이 바쁘게 살아온 지난해였고,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늘 감사하려고 애써왔고, 가능한 한 이웃과 정다운 사이이기를 원하며 살아왔다.
함께 기뻐하고, 나쁜 일엔 분노하고, 험한 일엔 놀라고, 슬픈 일에는 함께 걱정하고 울며…. 아직은 그래, 아직은 무감각하지만은 않은 내 정서와 이성에도 감사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별안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오늘 낮엔 방학이라 집에서 놀고 있는 두 아이가 밖에 나가 노는 일도 없이 집안에서만 빙빙 도는 게 보기에 딱해서 어머니가 아이들 손을 붙들고 대문을 나섰다고 하셨다.
막상 대문을 나서보니 골목길엔 나와 노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을 뿐더러 그렇다고 뚜렷이 갈곳도 없어 집 뒤에 있는 산에만 잠시 올라갔다가 내려오셨노라고 하셨다.
눈과 얼음이 깔린 골목길은 괴괴하고 찬바람만 휑하니 달아나더라는 것이었다.
『이 동네는 못살 동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찬바람이 지나갔을까.
어머니는 사람이 그리우셨던 거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담 너머로 별식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살아가는 이야기,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 그리우셨던 거다.
그게 어찌 나의 어머니에게 만한 한일일까.
통행금지 해제가 사람과 사람을 마음에도 일어난다면, 그래서 너의 집과 나의 집을 따뜻한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오갈 수 있다면, 손주들 손목을 끌고 대문 밖을 나서는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에 더 이상 찬바람은 불지 않으리라.
창밖에 어둠이 머무르고 이제 나는 잡을 자야 한다. 내일을 위해 잠자야할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남들이 잠잘 시간에 특별히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통행금지 해제는 별반 생활에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사이에 닫힌 문이 열리고, 막힌 통로가 개방되어 진정한 사랑과 우애의 통행금지가 해제된다면 우리의 생활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고『못살 동네』는『살맛이 나는 동네』로 서서히 탈바꿈해 가리라.
따뜻한 인정이 따끈한 아랫목처럼 그리워 온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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