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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쇼핑몰, 물건보다 분위기를 팔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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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4일 정식 개장하는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몰 입구에서 이 쇼핑몰의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총괄한 일본 모리빌딩도시기획의 야스이 히데키 이사가 포즈를 취했다. 호텔이 운영하는 첫 쇼핑몰인 파르나스몰은 현재 시험 운영 중이다. [사진 파르나스호텔]

16일 오후 1시30분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의 쇼핑·문화시설인 ‘롯데월드몰’에 롯데그룹 신동빈(59) 회장이 나타났다. 사흘에 걸친 순차개장 마지막 날에 현장을 최종 점검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는 명품관인 에비뉴엘과 면세점·쇼핑몰·영화관·아쿠아리움을 비롯해 모든 시설을 다 둘러보고 떠났다.

 그룹 총수가 직접 챙길 정도로 ‘차세대 복합쇼핑몰’ 경쟁이 뜨겁다. 롯데 뿐 아니라 신세계그룹·현대백화점그룹도 영화관·서점·놀이공원처럼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두루 갖춘 복합쇼핑몰을 3년 내에 줄줄이 열 계획이다. 기존 복합쇼핑몰도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해 대대적인 개편 작업 중이다. 아시아 최대 지하쇼핑몰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은 1년7개월여에 걸쳐 리모델링을 마치고 ‘복합문화공간’을 컨셉트로 다음달 27일 새롭게 문을 연다. 서울 영등포의 경방타임스퀘어도 다음달 말까지 현재 입점 업체의 60% 정도를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급호텔까지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파르나스를 운영하는 파르나스호텔㈜이 24일 5300㎡ 규모의 ‘파르나스몰’을 연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코엑스몰과 연결되는 파르나스 호텔 지하 1층이다. 보석 매장이나 양복점으로 구성하는 호텔 지하 상점가가 아니라 코엑스몰처럼 패션·인테리어·식음료 매장이 들어섰다. 호텔업체가 쇼핑몰을 여는 것은 국내 첫 시도다. 2016년 9월 파르나스 타워 부분까지 완성되면 규모는 7600㎡로 커진다.

 개장을 앞두고 시험 운영 중인 파르나스몰을 일본 모리빌딩도시기획의 야스이 히데키(安井秀樹·57) 총괄이사와 함께 돌아봤다. 모리빌딩은 일본 도쿄의 랜드마크로 손꼽히는 롯폰기힐스, 상하이의 110층 월드파이낸스센터(SWFC) 같은 굵직한 도심 개발 사업으로 유명하다. 모리빌딩은 첫 해외 종합 컨설팅 프로젝트로 파르나스몰의 설계부터 브랜드 구성, 매장 운영·관리 컨설팅까지 맡았다. 롯폰기힐스는 54층 모리타워를 중심으로 72만9000㎡나 되는 거대 복합 문화·상업·주거단지다.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파르나스몰을 맡은 이유에 대해 야스이 이사는 “모리빌딩은 개발사업을 통해 지역 전체를 활성화하는 ‘마치츠쿠리’(町作り·지역 만들기)를 중시한다”며 “서울 강남의 중심부인 테헤란로라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똑같이 롯폰기힐스를 만들 수 없다”며 단 하나 밖에 없는 ‘온리 원(Only One)’, 차별화가 모리의 핵심철학이라고 했다. “한국 쇼핑몰 시장이 과열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일본의 경험으로 볼 때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모리빌딩의 성공은 차별화가 바탕이다. 53층 꼭대기에 상업시설 대신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모리미술관)을 만들고, 장난감차 매장에 경주를 할 수 있는 트랙을 설치하는 식이다. 파르나스몰 매장에도 쿠쿠루자 팝콘, 콘트란쉐리에 베이커리 같은 ‘한국 1호점’을 직접 유치했다. 다른 몰에 있는 음료수(공차)·패션(비이커) 매장이라도 인테리어나 상품 구성을 완전히 바꿔 차별화했다. 하지만 이런 차별화 전략은 보편화하는 추세다. 롯데월드몰의 경우 이탈리아 보석 브랜드 포멜라토처럼 명품만 해도 50여개 브랜드를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스크린의 영화관, 복층 아쿠아리움 등 대형 문화시설도 갖췄다. 모리빌딩의 대표적인 특징인 문화예술적인 요소를 파르나스몰에도 아트 토이(Art Toy) 등을 통해 접목했지만, 인근 코엑스몰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스이 이사는 “차별화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쇼핑몰을 찾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브랜드를 갖추면서 차별화가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파르나스몰의 경우 ‘유행에 민감하고 매우 세련된 고객’을 컨셉트로 잡고 건물 설계 때부터 브랜드 구성까지 다 고려했다고 말했다. 야스이 이사는 “한국도 새로운 쇼핑몰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상품만 사러 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른 매장에서도 살 수 있는 제품을 굳이 그 쇼핑몰까지 사러 오게 만드는 것은 ‘쇼핑 분위기’라는 것이다. “똑같은 아이스크림이라도 1000원숍에서 산 그릇에 담아먹을 때와 최고급 도자기에 담아먹을 때 기분이 다르잖아요? 같은 브랜드지만 전혀 다른 기분으로 샀기 때문에 가치가 달라지는 겁니다.”

 일반 쇼핑몰처럼 모든 매장이 한눈에 보이도록 훤히 뚫려있지 않고, 구불구불한 길목과 군데군데 광장을 만들어 놓아 ‘쇼핑 산책’을 즐기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고객을 나이가 아니라 감성으로 구분하고 ▶1950년대부터 이어져오는 남성·여성·아동복·생활용품식의 층별 구분 대신 남성복 옆에 카페가 있고 유기농 주스 옆에 요리책과 그릇을 파는 통합 매장도 같은 맥락이다. 야스이 이사는 “대형 쇼핑몰에 수백개 매장이 있어도 어차피 고객은 다 못 둘러본다”며 “꼭 가고 싶은 3~4개 매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발업체(쇼핑몰)와 판매업체(개별 브랜드)의 협력 관계를 매우 강조했다. 물건 파는 사람, 수수료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팀워크를 통해 쇼핑몰 전체의 수익을 올리면 양쪽이 다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롯본기힐스의 경우 매달 운영업체와 각 브랜드 점장이 모여서 토론하고 평가와 시상까지 한다. 파르나스몰에도 이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야스이 이사는 “무조건 회의하자고 하면 다들 귀찮아하지요. 회의를 통해 실제 매출이 오르고 서로 도움을 받는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면 저절로 하게 됩니다”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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