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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몰락과 흡사한 길을 걷고 있다|군사에만 모든 힘…국민생활은 피폐|외채 누적…통화 남발로 인플레 가속|노동력 부족·농업파탄도 몰락 재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스코틀랜드에서 유프라테스까지 지배하던 거대한 로마제국은 그 판도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군사력의 증강을 필요로 했다. 불가사리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킨 군부의 세력은 결국 몇몇 군부 엘리트의 권력만을 키우게 된다.
지배자들은 오로지 국가라는 조직과 그 안전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압제와 가렴주구가 판을 쳐 국민생활은 피폐해지고 구매력은 감퇴했다.
제정 러시아와 「스탈린」, 그리고 얄타시대를 거쳐 광대한 지배영역을 물려받은 현재의 소련 지배층은 이제 더 이상이 영역을 합리적으로 장악할 수 없게 되자 모든 인적·물질적 자원을 제국유지를 위한 군사부문에 쏟아 넣고 있다.
자원으로 보아 캐나다 정도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나라가 군비에만 치중하다 보니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제3세계와 다를 바 없게 됐다.
70년대 중반 이후·동구국가들의 경제 성장률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5개년 계획기간 중에는 그 성장률이 더욱 줄어들 것이다.
군비와 치안을 위한 비용만이 지금까지처럼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동구의 학자들 계산으로 만도 지난 10년 동안 군사지출은 국민 총생산에서 15% 증가하고 있다. 군비가 점점 더 국민경제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달러 보유 50억불>
최근에 이르러 동구 점권들이 투자를, 급격히 줄여 소비자를 더 이상 희생시켜 가며 경제위기의 타개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조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임금은 생산성을 앞질러 상승하고 있으며 소비충동은 더욱 증강하고 있다.
잘못된 계획과 폭발적인 석유가앙등은 서방에 대해 8백억 달러의 빚을 지게 만들었다. 이 빚은 계속 증가, 한해에 1백억 달러씩 늘어나고 있다.
소련의 달러보유고는 50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소련은 3년째 연거푸 흉작을 기록한 뒤 소련 역사상 최대의 곡물수입 자금마련을 위해 금값이 내림세인데도 금을 계속 서방에 내다 팔고 있0다.
서방 통화를 조달하기 위해 소련은 올해에는 그 형제국가들에 대한 석유공급을 10% 줄이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동독과 체코는 새로운 난관을 맞게 됐다.
이 나라에서는 벌써 몇 달 전부터 폴란드로부터의 석탄공급이 줄어 들어 생산부문에서 위험할 정도의 둔화현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의 석탄수출은 8천1백만에서 3천1백만으로 격감됐다.
루마니아는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져 1백30억 달러의 외채를 안고 폴란드처럼 파산직전에 있다.
체코의 경우는 「슈트로우갈」 수장이 지난 11월 실토했듯이 새해에는 에너지·육류 및 주택공급 사정의 악화가 눈앞에 보이고 있다. 한때 사회주의의 과수원으로 불리던 불가리아에서는 생활필수품이 루마니아와 폴란드로 흘러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동독의 경제도 잔뜩 긴장상태에 빠져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소련의 프라우다지로부더 모범으로 칭찬을 받을 정도로 헝가리의 형편이 그중 나은 편이지만 대외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경제구조상 폴란드 위기의 여파로 언제고 쉽게 무너질 약점을 안고 있다.
고전적 공산주의 성장모델인 「자본과 노동의 집중투입」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앞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고대로마 제국이 내부적으로 와해과정에 있을 때 변방 미개민족의 침공을 받아 완전히 붕괴됐듯이 소련체제가 내부적으로 흔들리는데 밖으로부터 위기가 몰아친 것이다.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와 비슷한 증후들이 지금 소련체제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율 계속감소>
▲ 「막스·베버」는 로마제국 멸망의 초기 증상으르서 「인적자원의 부족」을 지적했다. 당시 로마제국이 서는 인구가 격감하면서 각계 각층에 인력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현재 동구와 소련의 서부공업 지대는 뚜렷한 출산율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선 노동력 자원의 결핍이 절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 다음으로, 한때 로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통화의 불안은 인플레를 재촉하고 있다. 로마때는 금화에 대한 일반화폐의 가치가 안정되지 않았던 게 불안과 위기의 요인이었다.
최근 동구의 양상을 보면 물자의 공급은 정체돼 있는데 비해 통화를 남발함으로써 물가를 부채질해 왔다.
▲고도로 중앙 집권화되고 비대해진 관료체제는 이 두 제국에서 모두 극복할 수 없음이 입증됐다. 로마 말기 관료들의 극단적 보수성 및 부패와 똑같은 현상이 폴란드 개혁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뇌의 강화, 갖가지 새로운 통제. 법률적인 규제를 가지고도 로마는 멸망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모스크바 역시 이 이상의 수단은 찾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에 대한 수탈과 가혹한 세금부과는 로마말기에 농업을 파탄으로 밀어 넣었다. 동구 국가들은 여러햇 동안 농업부문을 등한히 한 앙갚음을 지금 받고 있다.
공산주와 유토피아의 꿈이 좌절되고 나서부터 소련사람들은 개인적인. 안락 추구에 급급한 형편이다.
폴란드의 군사집권은 공산당 권력의 엘리트들이 조직화된 군사 독재자를 통해 그들의 딜레머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을까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소련은 현재 군사력만을 가지고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데울로기는 파탄되고 특권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당 때문에 현실론자들의 노력은 좌절되고 있다.
소련은 「스탈린」시대 공포정치로 대중을 억누를 수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당시엔 경찰만 가지고도 그것이 가능했으나 모든 것이 훨씬 다원화된 이제는 군사력으로도 국민을 누르기는 어렵다. 소련에서 가장 많은 예산과 우수한 전문가들을 갖고 있는 소련군부는 체제유지에 모든 자원을 소진해 버릴 것이다.
이재 서방이 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모스크바가 군비지출을 억제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소련이 로마와 공통되는 게 또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찰없이 권력을 교체할 메커니즘이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을 두고 「마키아벨리」는 로마제국 몰락의 가장 확실한 조짐이자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스티안 슈미트-하우애르 <디차이트사 (서독) 논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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