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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베트남 국교정상화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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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카이 총리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는 올해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1995년 양국이 외교관계를 완전히 회복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판 반 카이 총리는 종전 후 베트남 정상급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19~24일 미국을 공식방문한다. 이번 방문은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때처럼 양국 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 베트남 총리 방미=미국의 한 외교관은 베트남 VNA 통신에 "카이 총리의 미국 방문은 미국인이 베트남을 흥미로운 잠재적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에서 세력을 팽창하고 있는 '거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으로선 한때 적대국이었던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베트남으로서도 미국과의 협력은 절실한 형편이다.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지난해 대미 수출은 51억 달러에 달했다.

베트남이'(미국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만 용서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배경이다. 베트남은 개혁.개방 정책'도이모이'를 채택한 이후 최근 들어 7%가 넘는 고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카이 총리는 워싱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관리들을 만나고 뉴욕과 보스턴.시애틀을 방문한다.

총리의 방미 기간 중 양국은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문제도 적극 논의할 계획이라고 부 모안 베트남 부총리가 말했다. 최근 베트남을 방문해 카이 총리를 만난 미국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미국 기업인과 정치인 등이 베트남의 WTO 가입을 지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카이 총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도 만날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베트남상공회의소와 인력훈련 프로젝트에 관한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베트남항공은 보잉사의 B-787 드림라인 점보기를 5억 달러에 구입하는 계약을 21일 체결한다.

◆ 군사협력 강화=군사 부문에서도 미국과 베트남 양국의 협력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의 남진정책을,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카이 총리의 미국 방문에 앞서 피터 로드맨 미 국방차관보(국제안보담당)는 7~8일 베트남을 방문했다. 팜 반 트라 베트남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와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미국 방문단은 수도 하노이에 있는 지뢰 및 불발탄 제거 기술 연구소를 둘러봤다. 공안부와 외교부.국방사관학교도 방문했다.

트라 장관은 "로드맨 차관보의 베트남 방문은 양국 군과 국민의 상호 이해와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2003년 11월 트라 장관은 군 최고위 인사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양국은 국교 정상화 이후 베트남전 실종미군(MIA) 유해발굴, 불발지뢰 및 폭발물 제거, 미 해군 함정의 베트남 내 기항 등 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왔다. 베트남의 한 관리는 "미국은 베트남과 군사협력을 원하고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환 기자

*** 베트남, 종전 이후 뭘 했나

통일 30년 동안 베트남의 화두는 줄곧 경제였다. 도이모이(개혁.개방)는 필연적 결과였다. '한강의 기적'에 비견되는 '홍강(베트남 북부의 강)의 기적'은 이래서 나왔다. 도이모이는 1991년 시작됐다. 당시 도 무어 총리는 "개혁 없이 미래 없다"고 주창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모델이었다. 시장 경제와 사유 재산도 인정됐다. 덕분에 베트남은 지금 '자본주의의 다크호스'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출발은 미약했다. 남베트남 붕괴 이후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혼돈이었다. 급속한 사회주의 도입이 화근이었다. 수백만 명의 문맹자와 실업자들, 수많은 성매매 여성과 마약중독자, 돈이면 모든 것을 불사하는 조직폭력배 등이 강하게 저항했다. 과거 정권에서 일했던 공무원과 군인 등도 만만찮은 저항세력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수십만 명이 통일 베트남을 벗어나 미국.호주.프랑스로 이주했다. 무작정 조국을 등지는'보트 피플'은 이때부터 등장했다. 중국계 주민들에 대한 추방 조치는 중국의 반발을 샀다. 중국은 결국 캄보디아에 친베트남 정권이 출범한 지 1개월 뒤 베트남을 침공했다.

그러나 요즘 베트남이 겪고 있는 위기는 안에서 시작됐다. 핵심 위기는 공산당 자체의 타락이다. 지난해 2월 2일 농 득 마잉 당 서기장은 "통일 이후 발생한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혼란과 실책에 공산당의 책임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공개적으로 실토했다. 서기장이 토로할 정도로 베트남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는 심각하다. 방만 경영을 지속해온 공기업도 경제에 주름살을 몰고 왔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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