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 지역 이 사람!] 폐광촌에 '희망 나르기' 20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 원기준 목사가 학원 한 곳도 없는 철암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문을 연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홍창업 기자

7일 오후 4시 폐광촌인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철암역 인근 허름한 건물 2층의 '철암 공부방'. 30여 평의 비좁은 공간에 책상 10여 개와 5000여 권의 각종 아동 도서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공부방에서는 1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원기준(44.태백선린교회) 목사와 함께 재잘거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원 목사가 친구 등의 도움을 받아 2003년 4월 문을 연 이곳은 철암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유일한 공부방이자 도서관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의 광산 도시였던 태백은 지금은 곳곳에 빈집과 시커먼 석탄가루가 날리는 잿빛 폐광촌으로 전락한 곳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이 고향인 원 목사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태백시에 20년째 둥지를 틀고 폐광촌에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그에게 따라 붙는 직함은 광산지역사회연구소장.철암공부방 대표 등 7가지다. 이 때문에 원 목사는 태백 지역에서 목사보다는 사회운동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실제 그가 운영하는 교회 신도는 15명밖에 안 된다.

그는 총신대 신학대학원 2학기를 마친 85년 태백에 처음 발을 디뎠다. 광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서였다. 89년의 정선군 동원탄좌 파업 땐 투쟁에 앞장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91년 출소 뒤 다시 태백을 찾은 그는 이때부터 지역 개발의 전도사로 변신했다.

폐광촌을 살리기 위해 '광산지역 사회연구소'를 열고 정부와 폐광촌 주민들에게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뒤 주민서명 운동을 벌이는 데 앞장섰다. 원 목사를 비롯한 많은 지역 주민의 희망대로 정부는 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태백 지역은 요즘 탄광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각종 관광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는 또 91년부터 2000년까지 취학 전 장애아동의 교육 시설인 '태백 사랑의 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특별법 제정으로 정선 지역에 카지노장이 들어서자 도박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도박중독센터' 수석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도박 중독자 예방 및 치료에 힘을 쏟고 있다. 원 목사는 요즘 철암역 거리 500여m 구간을 '60~70년대 탄광촌 거리'로 재현하는 이른바 '탄광마을 박물관 조성 사업'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강원도도 원 목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1000억원을 들여 철암을 중심으로 인근 폐광 지역인 영월 상동과 삼척 도계. 정선 사북을 연계한 탄광역사촌 관광 벨트 조성 계획을 마련, 지난해 정부로부터 예산을 확정받았다. 그는 "이 사업이 완료되면 폐광촌에서 관광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태백=홍창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