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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 오래오래 사셔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며칠전 시어머님께서 75의 생신을 지내셨다. 갓 시집와서는 그리도 부담스럽고 왠지 거북하게만 느껴지던 분, 남편에게 이 투정 저 투정, 친정어머니는 어떻고…하며 시부모님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던 그때의 며느리는 왜 그리도 부족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오늘까지도 큰집, 작은집 손자·손녀 정성스레 돌보아주시며 늘 저녁 늦게 학교에서 퇴근하는 이 며느리가 안쓰러워『얘야, 춥다. 몸 좀 녹이고 저녁식사 하려무나』하시며 궂은 일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려고 애쓰시는 그분의 마음을 헤아릴 때 진정 고마움이 뼈에 사무치곤 한다.
생활에 쫓긴다는 핑계로 효도한번 변변히 못해본 채 어느덧 내 나이 40을 맞고서야 어머님께 감사하다는 표현을 글로나마 쓰자니 정말 얼굴이 뜨거워 온다.
항상 부족한 자식들, 며느리들을 행여 누가 흉볼세라 늘 좋은 점만 골라 친지들에게 말씀하시는 그 분, 일하다 잘못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그럴 수도 있지 뭘 그라느냐』하실 때는 진정 고개가 숙여졌다.
큰집이 독실한 카톨릭 집안임에도 우리는 시아버님 장례식 때를 제외하고는 성당 문턱을 지나길 꺼렸고, 행여 시어머님께서 우리 내외에게 성당 가라고 권하면 어쩌나 하던 우리들. 내 친정이 전통적으로 불교를 믿는 집안인데다가 남편도 별로 적극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성당 가기를 거부해 왔었다. 세월이 흘러도 통 종교에 대한 말씀이 없으셔 언젠가『왜 어머니는 우리보고 카톨릭을 믿으라고 말씀하시지 않느냐』고 여쭈워 보았더니,
『얘야, 신앙은 자유 아니냐. 너희들이 믿으라면 믿고 말라면 안 하겠니. 오죽 잘 알아하려고…』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정녕 할말을 찾지 못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스스로 터득한 깨우침에 의해 우리 다섯 식구는 너무 때늦은 일이었으나 지난해 12월19일 응암성당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영세를 받았다.
그날 그리도 좋아하시던 그분 뜻대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부끄럼 없는 생활이 되도록 노력하고 기원하며 살아갈 것을 가슴속 깊이 다짐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내색 한번 없이 이 못난 며느리의 성정과 고집을 참아오신 시어머님의 인내와 사랑 앞에 결국 나는 꿇어 엎드려 감사하는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다. 이런 시어머님의 도량과 인내, 그리고 나 같은 며느리의 깨우침이 조금만 더 일찍 이뤄진다면 이 세상에서 고부간의 갈등이나 불화는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어머님, 오래오래 사셔요. 나이 40에 겨우 철나기 시작한 이 작은며느리의 효도도 좀 받으시고 아이들 무럭무럭 잘 커 가는 것을 낙으로 지켜보시면서 여생을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굽은 허리, 새하얀 머리, 수많은 주름의 댓가를 어찌 보상할 수 있으리오마는, 좀더 오래 사시어 이 며느리도 먼 훗날 어머님처럼 훌륭한 시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세요.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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