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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복싱 백년사상 최고의 파이터는 『레너드』와『로빈슨』|「링」지 81년 송년호에서 선정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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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프로복싱 1백년 사상 전체급을 망라한 최고의 파이터는 누구인가. 프로근성까지 합해 다재다능한 복서는 웰터급의「슈거·레이·레너드」와「슈거·레이·로빈슨」으로 미국의 세계적 권투권위잡지인「링」지가 81년 송년호에서 선정, 화제가 되고있다.
특히 이는 헤비급의 50년대 무패의 챔피언「로키·마르시아노」와 60년대를 석권한 무하마드·알리」를 무시한 것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슈거·레이·레너드」(26)는 지난해 9월「토머스·헌즈」와 총 흥행수입 3천만달러(약2백10억원)짜리 세기의 결전을 벌여 14회 KO승으로 웰터급 통합챔피언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20세기에 들어 신이 보낸 최고의 테크니션』이란 찬사를 듣고있다.
「알리」「프레이저」「포먼」이 사라지면서 헤비급이 흥미를 잃어가자 「레너드」는 팬들의 새로운 우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새삼 소개가 필요 없는「레너드」는 76년 몬트리올올림픽 라이트웰터급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아마전적 1백50전 1백45승(75KO)5패를 기록했다.
그는 77년2월 프로에 데뷔, 79년11월에 WBC웰터급챔피언「월프레도·베니테스」(푸에르토리코)를 15회KO로 누르고 챔피언이 된 뒤 81년6월 WBA주니어미들급챔피언 「아유브·칼룰레」(우간다)마저 9회KO로 제압, 2개 체급왕좌에 올랐다. 이어 3개월 뒤 WBA웰터급왕자「토머스·헌즈」와 통합타이틀전을 벌인 것이다.
『초특급열차』라는 닉네임을 가진「레너드」는 프로에선 31승(21KO)1패의 전적을 마크하고 있는데 1패의 오점은「로베르토·두란」에게 당한 것이다.
그러면「레너드」와 쌍벽으로 불리는「슈거·레이·로빈슨」은 어떤 복서인가.
「알리」가 복싱을 시작한 것도 영웅인「로빈슨」때문이었으며「레너드」는 자신의 링네임을「레이·찰즈·레너드」로부터「로빈슨」의 이름을 따내「슈거·레이·레너드」로 개명까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로빈슨」은 20세 때인 1940년에 프로에 뛰어들어 65년까지 25년 동안 활약하는 동안 2백2전1백76승(1백9KO)8무18패를 기록했다. 그는 이 동안 웰터급·미들급 등 2개 체급의 타이틀을 보유했는데 미들급타이틀은 4차례나 다시 차지하는 등 전인미답의 기록을 남겼다.
아마에선 85전 전승(69KO·이중 40회는 1라운드KO)을 거뒀던 복싱의 달인「로빈슨」은 프로에 데뷔, 40연승을 기록하는 등 7년 동안 73승(49KO승)1무1패를 마크하기까지 챔피언들의 기피로 타이틀매치를 벌이지 못했었다. 이때까지 1패는 최근『성난 황소』란 자서전과 함께 염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한「레이크·라모타」에게 판정패한 것이다.
「로빈슨」은 43년2월5일 자신의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라모타」에게 10회 판정패한 뒤 꼭 21일 후인 2월26일 같은 장소에서 10회 판정승으로 설욕했다.
이후 그는 승리의 행진을 계속하여 무려87연승을 올렸으니 그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그의 패배의 대부분은 4O세 이후에 이루어져 한참 시절엔 패배를 모를 정도였다.「로빈슨」은『이기고 지느냐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이대전이 끝나면 상당한 달러가 내 주머니에 들어온다는 일념하에 복싱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철저한 직업인이었다. 「로빈슨」은 46년12월20일「토미·벨」을 15회 판정으로 누르고 공석중인 웰터급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는 이듬해 6월24일「지미·도일」과 1차 방어전을 벌여 8회KO로 승리를 거뒀으나「도일」은 링에서 의식불명이 된 채 끝내 숨졌다.
『나는 이 대전 전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도일」을 KO로 제압했는데 링에서 그는 죽고 마는 꿈이었다. 그래서 이튿날 나는 그 타이틀매치를 취소한다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당황한 주최측은 나에게 꿈은 한낱 기우라고 사정하면서 나중엔 목사들까지 불러들여 나를 설득시켰다. 결국 나는 링에 올랐지만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로빈슨」은 후에 이같이 술회하면서 중요한 대전을 앞두고는 꼭 꿈을 꾸었는데 기막히게 들어맞았다고 말했다. 「로빈슨」은 웰터급타이틀을 5차례 방어한 뒤 51년2월「라모타」를 13회KO로 이겨 미들급챔피언까지 차지했다.
이듬해 6월엔 3개 체급타이틀을 노리며 라이트헤비급챔피언「조이·맥심」에게 도전했으나 14회KO패로 물러났다. 그의 복서생활 중 유일한 치욕의 KO패를 기록한 것이다. 이 타이틀전 전날 밤에도 그는 링에서 싸우다 죽는 꿈을 꾸었는데 그대로 들어맞고 말았다.
「로빈슨」은 이 KO패 후 은퇴성명을 발표했으나 2년 후 다시 링으로 돌아와 56년엔 「칼·올슨」을 4회KO로 누르고 다시 미들급타이틀을 탈환했다.
그는 이후 3년 동안 타이틀을 두차례 뺏고 뺏기기를 거듭하다 46세인 65년11월10일「조이·아처」에게 10회 판정패 한 뒤 영원히 링을 떠났다.
키 1m80㎝의 핸섬한 흑인인「로빈슨」은 은퇴한 뒤 배우로 변신, TV와 영화에 여러 차례 출연했다. 그는「프랭크·시내트러」와『탐정』에서, 「리처드·버튼」「말론·브랜도」등과『캔디』라는 영화에서 각각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로빈슨」은 복싱에서 대전료로만 당시엔 거액인 4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아이들을 좋아한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슈거·레이·유드·파운데이션』이란 청소년을 위한 재단을 세워 말년을 보내고 있다.<이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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