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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만 쪼여주면 '셀프 수리'하는 전기회로 개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빛만 쪼여주면 스스로 끊어진 전선을 다시 잇는 전기회로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이나 웨어러블(wearable, 입을 수 있는) 전자기기 등에 사용하면 고장 났을 때 손쉽게 수리가 가능할 전망이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박정기ㆍ김희탁 교수, 성균관대 성균나노과학기술원(SAINT) 이승우 교수 공동연구팀은 레이저를 쪼여주면 끊어진 전기회로가 다시 붙는 ‘빛을 이용한 자기회복 전기회로’를 세계최초로 개발했다고 15일 밝혔다. 최근 나오는 웨어러블 전자기기에는 얇고 잘 휘어지는 재질의 전기회로가 내장돼 있다. 이런 회로들은 자주 쓰다 보면 손상이 되기 쉬운데 고집적 회로인 탓에 고장 난 부분만 따로 수리하기가 힘들다. 모듈 전체를 통째로 바꾸게 되면 수리비가 많이 든다.

연구팀은 편광(偏光, 전기장 벡터 진동 뱡향이 일정한 빛) 방향으로 움직이는 아조(azo) 고분자와 전기 전도도가 좋은 은나노 와이어를 이용해 이런 문제점을 해결했다. 잘 휘어지는 필름에 아조 고분자를 코팅한 뒤 그 위에 은나노 와이어를 덧씌운 전기회로를 만든 것이다. 이 회로의 전선을 끊은 뒤 레이저 포인터(단위면적당 발광 에너지 500㎽/㎠)를 쪼이자 아조 고분자가 빛을 좇아 움직였다. 위에 덧씌워진 은나노 와이어도 함께 움직여 끊어진 부분을 다시 접착시켰다.

과거에도 이 같은 ‘자기 회복’ 기술이 개발되긴 했지만 고온에서만 작동하거나 유해용매를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일상생활 속에 흔히 쓰이는 레이저 포인터 빛만으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KAIST의 박정기 교수는 “플렉시블(flexible, 신축성 있는) 전자기기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SF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도 탐낼만한 차세대 신기술”이라고 말했다. 연구성과는 재료 분야 국제저널인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스(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최근호에 소개됐다.

김한별 기자 idst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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