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위조지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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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일러스트=강일구]

Q 서울 강서구에 있는 새마을금고에서 5만원짜리 위조지폐를 1000장 넘게 발견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가짜돈을 만들어 택시비를 냈다가 잡힌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위조지폐를 만드는 사람이 느는 것 같습니다. 가짜돈을 가려내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세요.

A 틴틴경제 독자 여러분, 호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지갑을 한 번 열어보세요. 100원, 500원 동전이나 1000원, 5000원 지폐가 있나요. 그럼 1000원 한 장을 꺼내볼까요. 퇴계 이황 선생 얼굴이 자리한 앞면부터 펼쳐봅시다. 가운데 위에 ‘한국은행’이란 글자가 있습니다.

 네. 바로 한은에서 1원부터 5만원까지 모든 동전과 지폐를 만듭니다. 돈을 찍어낸 곳은 한국조폐공사지만 정확히 말하면 한은의 의뢰를 받아 ‘제작’을 했을 뿐이지요. 동전과 지폐의 종류, 모양에서 규격까지 전부 한은에서 결정합니다. 한국은행법 제47조를 보면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고 쓰여있을 정도지요. 다시 1000원 지폐로 눈길을 돌려볼까요. 앞면 중간에 ‘한국은행 총재’란 글자가 있습니다. 그 옆에 붙은 작은 네모 칸 안에도 ‘한국은행 총재’란 조그만 글자가 오밀조밀 자리하고 있네요. 한은 총재가 “이 돈을 믿고 써도 됩니다”라고 도장을 쾅 찍어 보증한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행만 아는 위조방지장치도

 그런데 요즘 위조지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네요. 컬러복사기로 만원이나 5만원권을 복사해 쓰다 걸린 건 애교 수준이랍니다. 새마을금고에서 적발했다는 5만원 위조지폐는 1351장으로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중앙일보 9월 22일자 18면> 은행 자동입출금기(ATM)를 감쪽같이 속일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가짜돈이 발견되기도 했지요. <중앙일보 6월 18일자 20면>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통계를 보면 지폐 100만 장 가운데 발견된 위조지폐 수는 0.3장이었습니다. 300만 장 중에 위조된 게 한 장 있을까 말까 했다는 거죠.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더 나은 수준이랍니다. 100만 장 가운데 0.2장 위조지폐가 있다는 일본과 비슷합니다. 호주(10.2장), 캐나다(29장)는 명함을 못내밀 정도지요. 유로화를 쓰는 유럽 나라에선 100만 장당 40.6장, 파운드화를 쓰는 영국에선 223.7장에 달하는 위조지폐가 나왔다고 하니 위조범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한국돈의 경쟁력, 상당합니다.

 “2006년부터 위조방지장치를 강화한 새 지폐를 발행했습니다. 이후 위조하기가 어려워져 관련 범죄가 많이 줄었습니다. 2009년 처음 나온 5만원권만 해도 위조방지장치가 18가지나 됩니다. 미국 같은 다른 선진국 화폐보다 위조방지장치 개수가 많습니다. 물론 5000원권 구권(2006년 전에 발행된 옛날 돈)을 8년 동안 5만 장 이상 찍어내 유통시켰던 위조범이 지난해 6월 잡힌 영향도 있습니다. 화폐 위조사범에 대한 처벌도 엄격하죠. 다행히 아직 그런 사례가 없긴 하지만 사형·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는 범죄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감별·신고의식이 높다는 게 위조지폐를 줄인 가장 중요한 원인이죠.” 한은에서 위조화폐 방지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명석 발권정책팀 차장의 설명입니다. 김 차장은 “사실 한은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공개 안 된 위조방지장치가 화폐 안에 몇 개 더 숨어있다. 위조범이 알지 못하도록 극비로 관리한다”고 귀띔하네요. 이중삼중으로 장치가 돼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숨은 그림, 아니 숨은 위조방지장치 찾기에 나서볼까요. 1000원짜리부터 시작합니다. 은색 점선이 지폐를 가로지릅니다. 플라스틱 재질의 띠입니다. 컬러복사기로 복사하면 이 부분이 까맣게 나옵니다. 1000원 지폐에 은색이 아닌 검은 점선이 찍혀있다면 100% 위조지폐란 얘기죠. 아까 들여다본 앞면의 ‘한국은행 총재’ 글자 아래 쪽에 레이스 비슷한 문양이 찍혀있습니다. 지폐를 들어 아래쪽에서 비스듬히 그 부분을 다시 보세요. 희미하게 ‘WON’이란 영어 문자가 떠오를 겁니다. 미세하게 올록볼록 모양을 두는 인쇄기법을 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전문용어로는 ‘요철잠상’이라 부릅니다. 복사해 만든 위조지폐에선 이 글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폐를 들어 앞면 왼쪽을 빛에 비춰보세요. 바닥에 그냥 뒀을 땐 없던 퇴계 선생 그림이 떠오를 겁니다. 종이에 미세한 두께 차이를 둬서 만든 명암입니다. 여기 이 선생의 어깨 쪽에 숨은 그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1000’ 숫자가 보이시죠. ‘돌출은화’라고 불리는 위조방지장치랍니다. 다음으로 지폐 왼쪽 톱니 모양의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정말 작은 여러 개의 ‘1000’ 숫자가 박혀있습니다. 저고리 깃 부분엔 ‘BANK OF KOREA’란 글자가 한 줄로 이어져있네요. 맨눈으로 확인했다면 시력이 좋다는 의미랍니다. 보통 돋보기가 있어야 볼 수 있는 위조방지기술인 ‘미세문자’입니다. 웬만한 복사기술로는 이 글자를 살려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앞면 가운데 ‘한국은행’ 글자 앞에 동그란 문양이 있지요. 지폐를 들어 빛을 비춰보면 뒤쪽 문양과 겹쳐지며 태극무늬가 나타납니다. 또다른 위조방지장치랍니다.

 뒷면으로 가보겠습니다. ‘1000’ ‘BANK OF KOREA’란 두 종류의 미세문자가 숨어있습니다. 지폐 오른쪽 아래 ‘1000’ 숫자가 있습니다. 지폐를 움직여가며 이 숫자를 유심히 살펴보세요. 보는 방향따라 색깔이 바뀝니다. ‘CSI(Color-Shifting Ink)’란 그럴듯한 영어 이름을 가진 색변환잉크 덕분입니다. 1000원부터 5만원까지 색만 다를 뿐 같은 장치가 쓰였습니다. 아무리 지폐를 돌려봐도 이 부분 숫자의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면 위조를 의심해야 합니다.

 이런 다양한 위조방지기술은 1000원에서 5만원까지 모든 지폐에 담겨있습니다. 위치나 문양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요. 단위가 높은 돈일수록 더 많은 위조방지장치가 숨어있습니다. 5000원 이상이면 홀로그램 문양이 추가됩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한국 지도, 태극, 4괘, 액면가에 해당하는 숫자 등이 번갈아 나타나죠. 앞면 가운데 ‘오천원’ ‘만원’이라고 쓰인 부분을 빛에 비춰보세요. 가로 막대 모양이 떠오를 겁니다. 이를 포함해 지폐마다 10여 개의 위조방지기술이 숨어있으니 꼼꼼히 찾아보세요.

섬유재질 특수용지 … 종이와 질감 달라

 위조지폐를 가려내는 간단한 방법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돈을 여기저기 만져보세요. 숫자와 글자, 인물이 그려져 있는 부분이 오돌토돌하게 느껴질 겁니다. 지폐 전체의 질감도 일반 종이와는 달라요. 섬유재질의 특수용지를 썼기 때문이죠. 전체적으로 질감이 미끈하다면 위조지폐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외선 감식기란 전문기기를 쓰면 위조지폐를 가려내기가 더 쉽습니다. 자외선을 비추면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불규칙적인 모양의 형광무늬가 떠오르거든요. 가짜 동전을 가려내는 방법도 알아야겠죠. 손으로 큰 힘을 주지 않았는데 구부러진다거나 다른 동전보다 두께가 얇고 문양의 경계가 흐릿하다면 의심해봐야 해요.

 만약 위조화폐를 발견했다면 바로 가까운 경찰서나 한은 지역본부에 신고하세요. 가짜돈인지 알고도 그냥 썼다간 무겁게 처벌됩니다. 재빨리 적극적으로 신고한 사람에겐 경찰에서 포상도 한다니 용기를 내세요. 기억을 더듬어 어디서 어떤 사람이 가짜돈을 건냈는지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틴틴 여러분 ‘우리돈 지킴이’가 돼 보자구요.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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