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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장 탈진" 정식의 호기|일 신용은이사 죽내 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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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께우찌·히르시」씨(일본 장기신용은행 이사 겸 조사부장·53세)는 동경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장기신용은행에 입 행하여 주로 조사파트를 담당, 알기 쉽고 정확한 경제평론으로 많은 팬을 갖고 있으며 경제이론을 현실에 잘 조화시켰다. 『뒷골목경제학』『일본의 산업 1980』 등의 저서가 있다.
요즘의 한국경제는 그 동안의 고도성장으로 가뜩이나 체력이 쇠잔해 졌는데 세계경제의 침체가 그것을 더욱 가속시킨 격이다. 오일쇼크의 충격을 크게 받았다. 국제원유 값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약 50억 달러의 구매력이 한국에서 산유국으로 이전되었다.
그것은 약 3조원에 달해 한국사람 1인상 약8만원, 5인 가족 기준으로 40만원이 1년 동안 빠져나갔다는 계산이 된다. 즉 그만큼의 구매력이 감소되고 그것이 경제성장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한국경제는 고도성장으로 생긴 왜곡을 고치고 새로운 세계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들기 위하여 요양소에 들어가는 셈치고 당분간 정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본경제도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 고도성장을 계속 했지만 그 동안에도 62년과 65년에 한숨 들려 치료에 청진하고 73년 1차 오일쇼크이후는 장기간의 요양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급히 요양생활에 들어가면 신체의 리듬이 이상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고속으로 질주하던 전차가 급정거하면 안에 있던 승객이 넘어지는 것과 같다.
경제도 고도성장에서 저 성장으로 급히 바뀌면 비슷한 혼란이 생긴다.
예를 들어 1백억 달러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가 10%의 경제성장을 한다고 치자. 1년간에 경제는 1백억 달러에서 1백 천억 달러가 된다. 그 차액 10억 달러를 생산하기 위해선 20억 달러(자본계수를 2정도로 가정)의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다른 면에서 보면 설비투자 관련사업에선 수요가 20억 달러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이 5%로 낮아지면 필요설비투자액은 10억 달러가 되고 설비투자관계 산업의 수요는 20억 달러에서 10억 달러로 준다.
즉 기계·철강·건설·시멘트 등의 산업은 대 불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종산업이 심한 불황에 빠지면 경제전체도 바닥에 빠지고 치료를 해도 그것을 감내 할 만한 체력이 없게 될 위험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빨리 손을 쓰는 것이 좋다. 사실 한국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쓰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먼저 대폭적인 감량경영을 단행하고 고도성장기에 부푼 군살을 빼는 것이 필요하다.
임금의 상승률도 억제해야 한다. 설비투자도 가능한 한 눌러 기존설비의 회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재고관리도 철저히 하여 자산전체의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 자금회전을 좋게 하고 차입금을 줄여 금리부담을 경감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량경영이 성공하면 손익분기점 조업도가 내려가므로 경기침체가 계속돼도 수익은 높일 수가 있는 것이다.
매크로(거시)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임금상승률이 내려가고 설비투자가 저미하면 최종수요가 감소하므로 물가상승률이 내려가고 또 차입기대가 줄어 금리가 내려간다. 기업은 재무구조를 개선함과 아울러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품질의 향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종업원의 장기근속과 작업숙련 도다.
정년까지 근무하는 종업원이 많을수록 서로 기분을 알아 기탄 없이 대화할 수 있고 또 자기 일에 대한 숙련 도도 높아 품질향상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거기다 몇 년마다 일을 바꿔 주면 많은 종업원이 여러 일을 알 수 있게 되어 어떤 제품이 고객에게 먹혀 들어가며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전사 적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종업원이 다른 회사로 옮길 기회가 적을 것이기 때문에 오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게 마련이다.
그들 중에는 작업방법의 개선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를 활발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그것을 채택·실행에 옮기며 제안자에게 특별 호감 금이라도 준다면 근로자들은 훨씬 일할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근로자들은 자기들의 제안이 채택된다는 형식으로 경영이나 생산에 참여케 되어 훨씬 창의력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품질향상으로 이익이 증대할 땐 임금을 올려 주면 더욱 충성을 다할 것이다.
물론 경영자나 관리자의 소득이 너무 많으면 종업원의 불만이 커지므로 그 점에 대해선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품질향상의 포인트는 전 종업원의 수준을 높이는데 있다. 또 모든 산업의 품질이 향상되면 수출경쟁력은 비약적으로 강해진다.
예를 들어 약 4만점의 부품 품질이 세계수준에 도달하면 자동차의 수출경쟁력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 기업체질을 강하게 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과제다.
상당기간동안 국민의 생활수준은 향상되지 않을 지 모른다. 기업경영자도 종업원도 세심한 창의가 필요하다.
기업체질의 질적 향상은 설비의 양적 확대에 비하여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한국경제의 비약은 어렵다.
나는 한국의 신설공장을 볼 때마다 그 장대한 설비나 공장내의 청결함, 또 종업원 주택의 호사스러움에 놀란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즉 공장사무소·본사건물·공장내의 화단 등은 확실히 훌륭하지만 그 공장의 능률이나 제품의 품질이 국제적 수준에 이르기 전에 이러한 좋은 비생산시설을 만들면 코스트를 높여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하는 점이다.
또 농촌주택이 훌륭히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 못지 않게 농기구의 기계화나 품종개량 투자가 더 중요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감량경영의 일면은 경제력에 직접 도움이 안 되는 투자나 지출을 삭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그 일을 달성하기 위해선 국민을 납득시켜 큰 센서스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한국의 제5차 5개년 계획을 위해서는 먼저 고통스러운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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