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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전환' 판결, 판사따라 '그때 그때 달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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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가정법원 김선종 수석부장판사는 요즘 성적(性的) 소수자 문제로 고민 중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3명이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꿔 달라"며 낸 호적 정정 신청 항고심(2심)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국내와 태국 병원 등에서 세 차례에 걸친 성전환 수술 끝에 여성으로 바뀐 김모(26)씨가 포함돼 있다. 1심에서 기각당한 김씨는 어려서 인형.치마를 좋아하고, 고교 때 동성 친구를 사랑하다 실연하는 등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김씨는 "하루빨리 여자로 살게 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최근 성별 변경을 원하는 성전환자들의 호적 정정 신청이 잇따르면서 법원이 난감해하고 있다. 신청자들의 딱한 처지와 인권을 고려하면 허가해 줘야 하지만 쉽게 허가할 경우 자칫 성적 가치관과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법원이 2003년 12월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성별 변경은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만큼 충실하게 심리해 달라"며 신중한 결정을 당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늘어나는 성별 변경 신청=인권단체들은 국내 트랜스젠더를 적게는 4000명에서 많게는 1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성전환자의 숫자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5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0~2004년 성전환자들은 모두 81건의 호적 정정(성별 변경)을 신청했으며, 이 중 41건이 허가됐다. 2002년 연예인 하리수씨의 신청이 받아들여진 뒤 더욱 느는 추세다.

성전환자들은 외모와 주민등록번호상의 성별이 달라 혼인.구직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렵다며 성별 변경을 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부 성전환자들이 연예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대부분은 사회 적응에 곤란을 겪어 유흥업소 등에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이에 성별 변경 허가가 판사들의 재량과 가치관에 좌우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2000~2004년 광주지법에선 전체 신청 11건 중 9건이 허가됐지만, 부산지법에선 13건 중 3건만 받아들여졌다. 서울가정법원에선 황인행 변호사가 법원장으로 재직했던 2002~2003년 6건을 허가했다. 반면 지난해 초 취임한 송기홍 법원장은 그동한 신청된 4건 모두 기각했다. 호적 정정 신청 사건의 1심은 법원장이 맡는다.

이정선 변호사는 "성전환자들 사이에 '하리수는 허가해 주는데 나는 왜 안 되느냐'는 불만이 많다"며 "성별 변경에 관대한 법원장이 있는 지역으로 호적지를 옮겨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기준 없는 엇갈린 결정=이처럼 법원 또는 판사마다 판단이 엇갈리는 것은 성전환자들의 성별 변경과 관련된 통일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호적 정정 신청은 원.피고가 다투는 형사.민사 사건과 달리 법원이 허가하면 이의를 제기할 상대방이 없어 그동안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기회가 없었다.

정상진 변호사는 "항소심에 계류 중인 김씨 등의 신청이 다시 기각된 뒤 대법원에 재항고하면 첫 판례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부대표는 "법원이 계속 보수적인 판단을 내릴 경우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허용토록 하는 입법 운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 400여 명은 이날 오후 서울 종묘공원 일대에서 '제6회 퀴어(queer:이성애적이지 않은 성적 소수자) 문화축제'를 열고 성적 소수자의 인권보장을 촉구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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