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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 의견이 당론으로 뻥튀기 … 다수결 왜곡하는 의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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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04년 9월 5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었다.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라며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게 좋겠다.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의도는 발칵 뒤집혔다. 현직 대통령 입에서 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 발언이 나온 대사건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가만있을 리 만무였다. 나흘 뒤 의원총회가 열렸다. 강경파들이 들고 일어선 의총의 결론은 뻔했다. ‘국보법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조차 “국보법 폐지 당론이 이렇게 빨리 정해져선 안 되는데…”라는 우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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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치에서 강(强)은 늘 강(强)을 부른다. 한나라당도 맞대응에 나섰다. 의원총회가 잇따라 열렸다.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은 그해 12월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일부 의원이 대치 상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의총장에서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라고 외쳤다. 이후 여의도 정치는 당론 대 당론이 맞서는 블랙홀에 빠졌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당의 의원총회는 소수 당론을 뻥튀기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게 뻥튀기된 강경 당론은 의회민주주의를 왜곡하곤 했다.

 노 대통령 발언이 나오기 전 국회 상황은 그래도 타협의 여지가 있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국보법 폐지에는 반대했지만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 등의 일부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국보법 개정에는 찬성했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였다. 그해 8월까지만 해도 개정에 동조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일부 문제 되는 조항을 고친다면 국보법의 반인권적 요소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이 8월 28일 발표한 국회의원 299명 전수조사에서 보안법 개정 의견은 146명으로 폐지 의견 117명을 앞섰다.

 당시 여야 정당엔 마지막 기회가 있었다. 정기국회 종료를 하루 앞둔 12월 30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김원기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회담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는 대신 ‘국가안전보장특별법’이라는 대체법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역시 의원총회였다. 천 원내대표가 어렵사리 합의안을 갖고 왔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는 막무가내였다. “한나라당 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반역”(임종인 의원) 등의 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합의안에 찬성하는 의견은 묻히고 말았다.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여야가 대립한 올해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158명)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온건파(15명)를 합하면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60%에 가까웠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의총의 결과는 늘 강경파가 지배했고, 36일간의 장외투쟁으로 국회는 개점휴업이었다.

 의총을 통한 당론 결정 과정이 다수결을 왜곡할 뿐 아니라 효율성마저 잃게 만든 셈이다. 박영선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두 번의 세월호특별법 협상안을 만들었지만 의총에서 거부된 게 단적인 예다.

특별취재팀=권호·유성운·허진·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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