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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반달', 시 '오감도' … 창작의 혼이 살아 숨쉬는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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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아버지는, 칸트의 산책처럼,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났다. 하루 두끼 식사와 산책을 빼면 일과는 독서로 채워졌고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아버지도 당신의 누이처럼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를 타고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그의 독서와 함께했던 철재 스탠드와 무릎을 덥혀주던 스토브는 오랜 기간 이 집에 머물게 됐다. 어린이들이 ‘윤극영 가옥’에서 ‘반달’과 ‘따오기’를 부르고, 어른이 되면 또 자기 애들을 데려오겠지. 아버지의 노래는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국내 첫 창작동요 ‘반달’을 작사·작곡한 윤극영(1903~1988)의 장남 윤봉섭(82)씨는 지난해 서울시에 수유동 집을 매각했다. 아버지가 1977년에서 88년까지 말년을 보낸 집에서 살며, 아들은 수많은 유품을 보관해왔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아버지만큼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 많은 유산을 어쩌나 고민하던 차에 서울시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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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는 ‘지금을 사는 시민의 기억이 담긴 근·현대 문물을 보존해 미래세대에게 남긴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해부터 미래유산 사업을 시작했다. 미래유산보존위원회는 박경리·마해송·윤극영 가옥 등 역사적 가치가 큰 작가의 집을 우선 매입해 보존키로 했다.

하지만 일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건 아니다. 작가의 집은 대부분 제3자가 소유하고 있었다. 마해송 가옥의 감정가는 평(3.3㎡)당 1000만원이었지만 집주인은 1600만원을 불렀다. 박경리 가옥 주인은 감정가(평당 600만~700만원)의 2배를 고집했다. 감정가를 받아들인 건 아들이 집주인인 윤극영 가옥(5억9800만원) 뿐이었다. 그렇게 매입돼 리모델링을 거친 ‘반달 윤극영 가옥’이 이달 하순 일반인에 공개된다. 11월 4일 개관을 기념해 서울시는 강북구와 공동으로 ‘동요 부르기 대회’를 연다. 동화연구교실과 시낭송교실도 정례화한다.

 관(官) 주도의 공공프로젝트인 ‘윤극영 가옥’이 1년 만에 마무리된데 반해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의 ‘이상의 집’ 보존 작업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10년 넘게 걸려 지난 4월 오픈했다.

 작가 이상이 우리 문학에 기여한 공로가 큼에도 ‘이상의 집’ 이전엔 그를 기념하는, 그 어떠한 공간도 없었다. 2002년 중앙일보가 “이상의 집터가 개발업자에게 팔릴 위기에 놓였다”고 보도하자 이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건축가 김원이 발벗고 나서면서 이듬해인 2003년 김수근문화재단이 집터를 매입했다. 이후 ‘이상이 태어난 집은 아니다’는 생가 논란이 번지면서 문화재 지정이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름지기 등 민간의 노력으로 이 집터는 결국 지켜졌다.

 장영석 아름지기 사무국장은 “이상이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보다 27세에 요절한 이상이 21년간 이 집터를 밟고 하늘을 보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는 사실이 더욱 가치 있다”며 “중요한 건 그들의 작품과 스토리이고,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도 “예술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라며 “예술인의 집과 그가 거닐던 거리, 자주 가던 카페는 단순한 얘깃거리가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말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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