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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 기자의 맛따라기] 간장보다 게 맛…입안 가득 퍼지는 갯내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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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크기로는 제주.거제.진도.남해 다음이지만, 크기에 비해 의미가 더 깊은 섬이다. 강화도를 지붕 없는 박물관, 한국사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반만년 우리 역사의 곡절이 섬 곳곳에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마니산 참성단으로부터 강화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 무렵 만들었을 고인돌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강화의 진산인 고려산 서쪽 끝 낙조봉에는 고구려 장수왕 때(416년) 창건한 적석사가 있다.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13세기) 강화는 39년간 전시 수도였다. 이때 부처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겠다고 불경을 목판에 새기는 불사를 했다. 그것이 또 세계문화유산 반열에 올랐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16년 판각불사를 선원면에 있던 선원사에서 주관했다.

조선시대에는 실록과 왕실 족보를 보관하는 사고가 전등사 뒤에 있었다. 왕실의 중요 서책과 보물들을 보관하던 외규장각은 강화성 안에 있다가 병인양요(1866년)때 프랑스군에게 털려 오늘날까지 반환을 싸고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후 강화는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미군들의 신미양요(1871년), 왜군들의 운요호 사건(1874년)이 잇따랐다. 결국 일본과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을 맺어야 했다(1876년). 조약을 체결한 서문 옆 군사훈련장 연무당은 이제 터만 남았다.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 중심부를 지나면 서문은 지금도 아픈 역사를 증언하며 서 있다.

서문을 지나 밋밋한 고개(진고개)를 넘어 잠시 가면 왼쪽 길가에 음식점 '푸른언덕'이 있다. 탁자형 고인돌로 유명한 강화지석묘가 있는 고인돌공원으로 가는 중간이다. 간장게장 맛이 아니면 시골 주막 같은 집이다.

간장게장을 잘한다는 음식점은 많다. 싱싱하지 않으면 담글 수 없는 간장게장이 이토록 흔해진 것은 냉동기술 덕이다. 바다에서 잡는 즉시 급속 냉동해 보관하기 때문에 신선도나 맛을 비교적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푸른언덕'에서는 수협에서 냉동 꽃게를 받아다 하루 30마리씩 게장을 담근다. 꽃게의 제 맛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이 이 집의 비결이다. 꽃게는 소금물에 한번만 씻는다.

"민물에 여러 번 씻으면 뒷맛이 떫어져요. 소금물에 개흙만 씻어내고 바로 담가요." 주인 이순덕(51)씨의 말이다.

게장을 담그면 24시간 재웠다가 간장을 다시 달여 붓고 48시간 지나면 개봉한다. 유명하다는 게장집들이 많은 향신료를 넣어 복잡 미묘한 간장 맛을 내는 데 비해 이 집은 초라하다 싶게 간단하다. 간장 맛이 복잡하면 게 맛이 죽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생강, 맛술, 사이다, 세 가지 간장이 전부예요. 집 간장에 사온 간장 두 가지를 섞는 비율이 내 손맛이죠."

주인 이씨는 북한 땅이 코앞에 보이는 강화도의 최북단 양사면 철산리에 산다. 대대로 이 마을에 살아온 집안, 시어머니에게서 게장 담그는 법을 배웠다. 현지인들도 '푸른언덕'의 게장 맛이 예전부터 집에서 해 먹던 맛이라고 한다. 게장은 짠 것과 덜 짠 것, 두 가지로 담근다. 현지의 나이든 분들은 짠 것을 찾기 때문이다.

알과 속살이 꽉 찬 게장은 갯내음이 그윽하다. 큼직한 게딱지의 구석구석을 후벼 모아 밥을 비비면 쌀밥 반 그릇이 간 데가 없다. 게장백반의 15가지 반찬은 하나같이 음식점이 아닌 가정집 맛이다. 특히 우거지찌개는 그것만으로도 밥 한 그릇 비우기에 넘치는 별미다. 식사 끝 무렵 뚝배기에 끓여 내오는 누룽지도 과식의 거북함을 잊게 한다.

꽃게가 귀해져 값이 만만찮다. 둘이 게장백반과 생선구이백반을 하나씩 시켜 함께 먹는 것도 지혜로운 선택이다. 게장이 일찍 떨어지는 날도 있으니 전화해 보고 가야 헛걸음을 피할 수 있다. 음식점 뒤뜰의 각종 야채는 뒷집 할머니가 기르는 무공해 농산물. 주인 이씨에게 말만 잘하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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