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이홍구 칼럼

요동치는 국제질서, 전략적 선택의 계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중국의 시진핑이 지향하는 미·중 관계, 즉 신대륙 관계를 종합적으로 기획할 ‘중국의 키신저’가 있는지. 지난주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회의에서 제기됐던 질문에 대해 베이징대 자징궈(賈敬郭) 교수는 과연 중국에 그러한 포괄적 전략기획가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중 관계는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힌 채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의 제인 펄레즈 베이징특파원은 키신저와 같은 전략가는 중국보다도 오늘의 미국이 더 필요한 실정이라는 의미 있는 소견을 내놓기도 했다.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역사적 전환기에는 강대국을 포함한 모두가 미래로 향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략적 구상을 필요로 하는데, 과연 이를 충당할 큰 지도자들이 있을지.

 냉전시대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미·소 대결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이 큰 무대가 되어 미·중 관계가 국제질서의 향방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의 미·중 관계는 냉전시대의 미·소 관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필히 유념해야 한다.

한마디로 미국과 중국은 시장의 세계화 시대에서 경쟁하는 세계 제1, 제2의 경제대국임을 유의해야 한다. 한 마당 안에서 미국의 전통적 자본주의와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벌이는 경쟁이 정치 및 군사 차원으로 어떻게 연계될 것인가라는 세기적 과제에 대해 결정적 분석이나 예측은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알리바바란 중국의 신흥 정보통신업체가 뉴욕 증권시장에 상장 즉시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미국이나 중국이나 꿈을 강조하는 큰 대륙국가들이다. 미국은 꿈을 지닌 이민자들의 나라로서 불과 238년 만에 세계 제일의 부강한 민주국가를 만들어 냈다. 중국은 가장 오래된 대국으로서 수천 년 이어온 문명을 바탕으로 꿈과 전통을 보전·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실용성과 실리를 중요시한다는 점이 두 나라 국민과 문화의 공통된 성격이라 하겠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제도 긍정적으로 고려할 것을 중국의 지도자들은 지난봄부터 시사해 왔다. 중국이 제안한 AIIB, 즉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역시 미국 및 국제기구들과의 협의를 거쳐 전향적으로 고려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광활한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인도양에서의 해로 안전을 위해 작전할 수 있는 미국의 해군력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중국은 소홀히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중 협조관계의 앞날에 무엇보다도 조심할 것은 그 관계의 순조로운 발전을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 제3국들의 움직임이라는 자징궈 교수의 솔직한 학자적 경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국이 미국과 협조하는 것을 경계하는 듯싶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미국이 중국과 아시아의 평화보전 등을 긴밀히 상의하는 것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듯싶은 아베 일본 총리에게서 그러한 제3국들의 불편한 눈초리를 느낀다는 것이다. 왕년에 제국의 위치를 누렸던 러시아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는 누구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미·중 관계가 공동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선도하는 동반자적 협조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며 이를 국가 외교전략의 핵심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미국과 중국이 충돌한다면 즉각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 한반도라는 상황의 논리에 입각한 자기보호의 본능 때문만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마지막 숙제인 한반도 분단 상황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그리고 그 숙제를 풀어가는 데는 미·중 협조가 필수선행조건이란 판단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7000만 한민족은 남이든 북이든 지금의 교착상태에 인내력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외교정책에서 한반도 문제의 우선순위를 조속히 상향시킬 것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미·중 협조체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무엇인가는 섣불리 속단할 수 없다. 북한이 추구하는 핵보유국의 목표를, 즉 동아시아에서의 중국과 북한이란 두 개의 핵보유국이 공존하는 상황을 미국과 중국이란 강대국들이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고는 북한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을 갖는다는 것으로 힘은 되겠지만 반면 부담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한반도 문제 해결에는 북한의 현명한 판단이 중요한 변수로 우선돼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남북관계 조성을 위한 한국의 적절한 전략 선택이 필수적인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전략적 선택의 계절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