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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노하우로 딸은 감각으로 2년 간 ‘찰칵 궁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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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 24면

각기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작가 이은주(69)·최시내(38) 모녀는 전사(戰士)처럼 보였다. 험한 세상에서 서로 등을 기댈 수 있는, 서로에게 든든한.

‘같은 길 가족’ 사진전 여는 이은주·최시내 모녀

“이제는 혼자 일하러 가면 솔직히 불안해요. 아무래도 젊은 애가 준비도 잘하니까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딸애는 번득이는 감각이 있고 저는 노하우와 지혜가 있으니 궁합이 잘 맞는 셈이죠.”

이 작가는 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사진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래 ‘이은주가 만난 108 문화예술인’(2003), ‘이은주가 만난 부부 이야기’(2008), ‘백남준 5주기 추모전’(2011) 등 선보여온 베테랑.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눈으로, 카메라로 한결같이 지켜봐 왔다. 2010년 성남아트센터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최 작가는 지금까지 주로 공연 사진을 찍어왔다.

집과 현장에서 항상 사진 이야기를 나누던 모녀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다른 가족들의 모습을 찍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은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분야별로 배분하는 일이 그랬고, 부부·형제자매·부모자식으로 구분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일정이 안 맞고 가까스로 맞춰 놓아도 ‘펑크’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2년 가까이 흘렀다.

“모델을 찾아가면 엄마와 제가 사진을 같이 찍어요. 그리고 좋은 사진을 고르는 방식으로 작업했죠. 약간 배틀 느낌이랄까? 그런데 현장에서 서로 의견이 다를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일단 시키는 대로 하고 나중에 제가 하고 싶은걸 찍는게 저만의 노하우죠.”

그렇게 문화예술계 33가족 78명의 ‘문화 DNA’를 사진으로 해부한 전시가 바로 ‘동행 33’(10월 7~13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이다. 전시 도록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같은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한 ‘모델’들의 다양한 소회가 있어 눈길을 끈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와의 인연에 대해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나 오늘까지 62년이나 같이 왔더니 이따금 날 때부터 함께 있은 느낌”이라며 “수레를 같이 끌며 사는 게 동행”이라고 말한다. 시인 김초혜는 소설가 조정래와의 ‘동행’에 대해 “같이 가되 한 집을 둘이 짓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집을 지으면서 가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연극연출가 김정옥씨는 딸 김승미 교수(서울예술대 연극과)에게 “우리의 목적지는 어떤 장소나 지위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며 “너와 더불어 갈 수 있어 더욱 아름다운 광대의 길”이라고 들려준다. 김용란 김안과병원장은 아버지 김희수 건양대 총장에게 작은 고백을 한다. 항상 새벽 3시에 일어나 병원 라운딩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나이 들어 새벽잠이 없어서 일찍 일어나시나 보다’라고 생각했다는 것. 하지만 ‘이를 악물고 일어나 환자들을 보고 병원 시설물들을 점검하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철없는 딸의 무심함을 반성한다.

그래서 이 전시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세상 모든 가족들의 자화상이다. 웃고 울며 지지고 볶으면서도 서로 사랑하는 우리의 얼굴이 그 속에 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이은주·최시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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