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이민보내는 80노모|허전하고 적막한 마음 자식이 알기나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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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느새 성큼 다가선 겨울. 창문 너머로 하얗게 뿌리는 눈발이 자못 스산해 보인다. 하필이면 이 춥고 을씨년스러운 계절을 택해 떠날 게 뭐람. 며칠전 작은 오빠(친정)식구들이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어머니 80평생에 또 한차례 진통을 치렀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자식은 부모를 버린 셈이고 부모는 여생을 보고픔으로 연연해 할 것이다.
『그래도 성아애비가 퍽이나 어미한테 효성스럽고 자상한 편이었는데….그 복마저도 지니지 못했으니…. 하기야 설에나 한번보고 추석에나 만나보는 것이, 고작 일년에 2∼3번이면 그만인데 막상 떠나고 보니 이렇게도 허전하고 적막하단 말가?』
『내가 안 죽어 원수구나. 공연히 명만 길어 자식한테 큰 짐만 되게 하고. 명이 길거들랑 아픈 데나 없든지. 아무리 딸자식인 네 앞이지만 내 속을 다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니? 성 당엘 가보려 해도 이젠 혼자서는….』
말끝을 잇지 못하시는 어머니. 요 며칠 사이에 더욱 늙어버린 어머니. 야위고 수척해진 모습을 대하니 한없는 연민이 가슴을 엔다. 이게 혈연과 정인가보다. 가슴속의 슬픔이 가득 괴어 방울방울 눈물져 떨어지는 것 같다.
진정 가슴을 에는 듯한 아픔을 어찌 하랴!
90을 바라보는 고령.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식을 보내야 했던 노모의 아픈 마음을 내가 무슨 글재주로 10분의1인들 대변할 수 있을까!
딸자식이라고는 하지만 나 살기에 바빠 어머니에게 너무나 무심해버린 지난날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정이 부족하리오만,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더욱 유별난 자식정을 가졌던 분이신 것 같다. 작은 몸집에 유난히도 가냘픈, 오목한 콧날하며, 반듯한 이마, 아직도 옛날의 그 고운 모습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어머니. 마음이 여려 자식들에게 야단 한번 못 치시고 혼자 힘겹게 7남매를 키운 어머니.
성년이 되어 아들은 며느리에게 합하고 딸은 사위에게 합해서 살아가는 자연의 순수한 이치가 노모를 더욱 서글프게 한 것이 아닐까.
누구 한 자식이라도 노경의 어머니를 따뜻하게 보살폈던들 어머니의 만년은 좀더 따뜻했을텐데…. 그래도 제자식은 소중한 줄 알아 자식영양관리다, 장래교육 문제다, 잡다하게 신경을 쓰면서도 노모의 근황은 생각안해 본 자식, 나는 새삼스럽게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자식으로서의 불효와 경제적인 무기력과 자책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새삼 핵가족시대다, 부부 위주다 하면서 노부모와 자식간의 현저한 거리감, 부부와 자식만이 가족의 구성원이고 부모는 잠시 머무르는 불청객으로 여기는 요즈음의 풍토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 노인들은 별 어줍잖은 일에도 서러워지고 즐거워한다. 인생의 황혼에 도달한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음식, 값진 의복만이 아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그분들을 우리의 생활속에 끌어들여 함께 살아도 마치 물위의 기름처럼 겉돌아 소외감속에 살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서울성북구안암동대광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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