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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과자 만드는 아이들 '까르르~' 말타는 어른들 '짜르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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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시리 문화마을 조랑말 체험 공원에서 초원 승마 프로그램에 참가한 관광객이 말을 타고 말테우리 동산 인근을 지나가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여느 농촌 체험마을과 다르다. 주민이 앞장서 지역 자원을 개발해 체험마을을 꾸미는 게 보통이지만, 가시리마을은 외부의 도움이 컸다. 2009년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으로 ‘신문화공간 조성사업’을 추진할 때 전국 곳곳에서 예술가 수십 명이 내려와 마을을 개조했다.

이들 예술가의 지도 아래 가시리 주민은 밴드·난타·국궁 등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해마다 세밑에 축제를 열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겨룬다.

가시리마을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내세운 콘텐트가 말(馬)이었다. 조선시대 국영목장이었던 ‘갑마장’이 마을 안에 있던 사실을 떠올려, 말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기획했다. 2012년 9월 국내 최초의 리립(里立) 박물관인 조랑말 박물관을 개관했고, 승마장과 캠핑장을 조성해 관광객을 유치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지난해 가시리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은 10만 명을 넘어섰다. 올해 목표는 12만 명이다. 이제 가시리마을에는 ‘문화마을’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이 체험형 농촌마을의 성공사례 두 번째로 제주 가시리 문화마을을 소개한다.

흥미진진한 ‘말똥과자’ 만들기

“여러분 이게 뭔지 알겠어요? 말똥이에요. 이걸로 과자를 만들어 보겠어요.”

조랑말 체험공원 강의실. 김채윤(33) 강사의 설명에 “어떻게 말똥으로 과자를 만들고 먹어요?”라며 아이 5명이 까르르 웃는다. 김 강사가 손에 든 건 코코아 가루와 버터·밀가루 등으로 만든 반죽이었지만, 말똥과 색깔·모양이 비슷해 꼬마들 대부분이 속는단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말똥이 더러운 것만은 아니에요. 말똥은 농사지을 때 거름으로도 사용되고 겨울에는 난방 연료도 됩니다. 아주 착한 친구들이죠.”

미리 숙성시켜놓은 어른 주먹만한 반죽을 김 강사가 하나씩 건넸지만 아이들이 만지기를 주저한다. 호기심 많은 한 꼬마가 냄새를 맡더니만 “에이~ 아니잖아”라고 말하자, 그제야 아이들이 경계를 푼다. “밀가루와 코코아 가루로 만든 반죽이에요. 이것으로 아무거나 만들어 보세요.” 김 강사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아이들이 반죽을 조몰락거린다.

“어떤 부모는 모형 틀을 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주지 않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들어 봐야 창의력도 쑥쑥 자라거든요.” 20분쯤 지나자 아이들 작품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조랑말 체험공원이어서 대부분 말을 만들었지만 그 중에는 자신의 얼굴을 만든 아이도 있었다.

가시리 문화마을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이미 구워놓은 도자기에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입히는 조랑말 꾸미기, 말 가면 만들기, 머그컵 만들기 등도 있다. 마을에 상주하는 문화 예술가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채덕신(48) 가시리 문화마을 사무국장은 “지금도 문화예술 전문가 20여 명이 마을에 상주하면서 가시리만의 독특한 콘텐트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말도 타고 박물관도 구경하고

가시리 문화마을의 테마는 ‘말’이다. 조선시대 말 중에 가장 으뜸인 말만 골라 길러 임금님에게 진상했다는 갑마장이 있던 곳이어서다. 당연히 말과 친해지고 말을 타고 가시리마을의 경치를 눈에 담아 오는 프로그램이 많다. 아이는 주로 말먹이 주기와 체험 승마를, 어른은 초원 승마를 많이 이용한다.

말먹이 체험은 조랑말 체험공원 안의 따라비 승마장에서 열린다. 조그마한 바구니에 담긴 건초를 한 움큼 쥐고 제주도산 조랑말이나 당나귀에게 주면 된다. 종종 “말이 물었다”며 우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말은 온순한 동물이어서 그냥 손바닥에 건초를 올려놓으면 혀와 입술로 받아먹는다.

체험 승마는 둘레 50m쯤 되는 원형 마장을 빙글빙글 도는 프로그램이다. 교관이 고삐를 잡고 걸어가면서 말을 끌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 반면에 초원승마는 따라비 승마장 바깥쪽에 펼쳐진 초원을 짧게는 800m, 길게는 3㎞ 정도를 산책하는 프로그램이다. 초보자는 체험 승마와 마찬가지로 교관이 말을 끌고 간다. 말을 좀 타본 사람은 교관과 함께 말을 타고 초원을 쉬엄쉬엄 걸어가면서 인근에 있는 따라비오름이나 번들오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가시리 문화마을에는 조랑말 박물관도 있다. 제주도의 유일한 조랑말 관련 박물관이다. 조선시대 사용했던 마패도 있고, 편자 등 말 장구가 100여 개 전시돼 있다. 목동(牧童)의 제주 방언 ‘말테우리’의 삶도 살펴볼 수 있는데, 말테우리가 백중 때 ‘말이 무탈하게 자라달라’며 제사를 지냈다는 테우리동산이 박물관 바깥에 있다.

●여행정보=제주공항에서 가시리 문화마을(jeju horsepark.com)까지는 자동차로 약 1시간 걸린다. 한라산 동쪽 중산간마을을 지나는데, 제주도의 다른 지역과 달리 주변이 확 트여서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제동목장과 정석항공관이 가는 길에 있다. 인근의 따라비오름에 오르면 가시리 문화마을뿐 아니라 멀리 성산 일출봉까지 볼 수 있다. 따라비 승마장의 체험 승마는 7000원이고, 먹이 주기 체험은 2000원이다. 초원 승마는 1만2000원부터 3만5000원까지 다양하다. 조랑말 체험공원 안에 몽골식 천막 게르가 있어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개인 2만원, 게르 한 동(6인 기준) 10만원. 조랑말 체험공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화요일 휴관한다. 070-4145-3456.

글=이석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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