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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0 vs 19 한국 30년, 일본 146년 기초과학 격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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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일 화학상을 끝으로 올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마무리됐다. 한국은 유룡(59·KAIST 화학과 특훈교수)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장과 찰스 리(45·한국명 이장철·미국 잭슨랩 유전체의학연구소장) 서울대 석좌초빙교수가 각각 화학상과 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최종 수상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85) 일본 나고야대·메이조대 교수, 아마노 히로시(天野浩·54) 나고야대 교수,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60)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UC샌타바버라)대 교수가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들을 포함한 역대 수상자는 총 19명으로 늘어났다(일본 국적자는 17명). 이를 두고 인터넷 등에서 양국의 수상자 숫자를 비교해 ‘19대 0’이란 냉소적 말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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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전문가들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결과(노벨상 실적)만 놓고 스포츠경기 점수 비교하듯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노벨상 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기만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룡 단장과 찰스 리 교수는 민간 기업인 톰슨로이터에 의해 노벨 수상 예상자로 꼽혔다. 이 회사는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174명의 수상자를 예상해 그중 34명을 맞혔다 . 한국계 과학자가 여기에 이름을 올린 게 처음이어서 화제가 됐지만 공식 후보는 아니었다.

 반면 일본은 첫 노벨상이 수여된 1901년부터 공식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노벨위원회가 공개한 1901~63년 후보 명단에 따르면 일본은 1901년 기타자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가 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명된 이래 총 163명이 공식 후보로 꼽혔다. 같은 기간 한국인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기획실장은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래 국가가 지속적으로 기초과학 분야를 지원해 왔다”며 “한국과는 뿌리의 깊이가 다르다”고 말했다. 차 실장은 도쿄대(1886년)·교토대(1897년) 등 당시 세워진 7개 제국대학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이 중 5개 대학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올해 수상자 중 아카사키(교토대)와 아마노(나고야대)도 이 경우에 속한다.

 반면 한국은 이보다 훨씬 늦게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했다. 77년에야 미국과학재단(NSF)을 본떠 한국과학재단(현재 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됐고 본격적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하기 시작한 건 80년 이후다. 국가 연구개발비(R&D) 총액이 1조원을 넘긴 게 93년, 유룡 단장 등 ‘국가대표급’ 과학자들의 연구를 장기 지원하는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이 시작된 건 96년이다. 일본 기초과학의 뿌리가 100년이 훌쩍 넘는 반면 한국은 30년이 겨우 넘은 셈이다.

 안화용 한국연구재단 성과확산실장은 “일본은 1868년 기초과학 투자를 시작해 1901년부터 꾸준히 후보를 낸 끝에 49년 첫 수상자(유카와 히데키·물리학상)를 배출했다”며 “우리는 뒤늦게 시작해 올해 첫 수상 예상자를 낸 만큼 실망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안 실장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지원책으로 “연구자 맞춤형 장기 지원”을 꼽았다. 현재 한국의 국민총생산(GDP) 대비 국가 연구개발비 투자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4.4%)다. 하지만 일부 대형 연구단을 제외한 개인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은 모두 3년짜리다. 그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연구비가 끊긴다.

 KISTEP 차 실장은 ‘노벨상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제2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01~2005년)에서 “향후 50년간 노벨상 수준의 국제적 과학상 수상자 30명 배출”을 목표로 내걸고, 노벨생리의학상을 주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 일본학술진흥회(JPSP) 연락사무소를 설치했다. 이곳에 4~5명이 상주하며 일본 연구자 초청 강연 등을 주선하고 있다. 반면 한국연구재단의 스웨덴 사무소 직원은 1명뿐이다. 몇 해 전 주스웨덴 한국대사관에 최초로 과학담당 공사(윤헌주 현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책국장)를 파견하기도 했지만 현재 명맥이 끊긴 상태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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