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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와 미꾸라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모든 사람의 한가닥 기대가 무너져 내린 11월의 마지막날. 14세 불구소년을 납치해 살해, 암장한 범인이 바로 소년을 가르치던 선생님으로 밝혀지고 두여고생 공범은 선생님과 불륜의 관계를 여러해 맺어 오던 끝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윤상군사건의 전모는「있을 수 없는 일들이 눈앞의 현실이 되곤하는 충격에 면역이 된 우리사회 모든 성원들에게도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로 가슴을 떨리게 하고있다.
도박·간음·유괴·살인·암장…. 인간이 범할수 있는 모든 흉악한 범죄를 두손으로 다 저지른 선생님은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으로 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물론 자수도 하지 않았다. 1년 넘게 태연히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대학원에 나가고 공범인 여제자들과는 은밀한 관계를 계속해왔다. 아…, 선생님….
경찰관이 피살자의 예금통장을 훔친 하형사 사건의 충격이 히로시마(광도)에 떨어진 원폭정도라면 이번 사건은 수폭의 위력으로 병든 우리사회, 마비된 양심에 내리 꽂혀 폭발했다.
물론 우리는 이 사건을 일반화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된다.
주교사가 있는 한편에서 훨씬 더 많은 수의 교사들이 전국곳곳에서 묵묵히 「사도」의 바른 길을 지키기에 땀흘리고 애태우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스승의 바른길」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겠지만 주라는 특수한 변태인격으로 해서 모든 스승들에 대한 존경이나 애정을 포기한다면 한마리 미꾸라지가 온 우물물을 흐리도록 용납하는 어리석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범죄를 잇달아 낳는 우리사회의 병리다. 하형사 사건이나, 이번 사건이나 동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돈」-. 돈을 얻기 위해 경찰관의 직분도, 스승의 사명도 팽개쳤다. 아니 잊었을 것이다.
이기적 목적만 달성되면 과정이나 수단은 무시해 버리는 이 풍조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다.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이나 권력이 용납되지 않는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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