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있던 가정부가 시집가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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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홍성장
내가 전에 데리고 있던 일순이가 시집을 갔다. 같은 공장에 다니던 기능공의 아내가 된 것이다.
신랑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온 경력이 있는 전기배선공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다시 그곳으로 가서 돈을 벌어오기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알찬 청년이어서 내 마음은 참으로 흡족하다.
일순이가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땐 연탄불도 갈아넣을 줄 모르고 바늘귀도 낄 줄 몰랐다. 그랬는데 한 3년 데리고 있는 사이 빨래푸새며, 이볼호청, 요호청 싯는 법도 얌전히 배우고 무엇보다도 하수도에 밤알 하나 안버리는 알뜰한 처녀로 자라주었다.
신장염으로 누워있는 나에게 그는 장장 6개월을 식구들 밥하고 따로 흰죽을 쑤어 나를 간호 주었다. 그 덕택으로 나는 살아났었다. 그걸 생각하면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신귀옥이라는 본이름을 두고 그를 일순이라고 부르는 연유는 우리 훈경이보다 그가 나이가 많으니까 일순이로, 훈경이는 이순이, 그 밑으로 이들 아이는 건너뛰고, 앞집에서 얻어온 새끼고양이는 삼순이, 이렇게 나이순대로 이름을 지어 불렀다.
그리하여 지금은 아파트에서 그 좋아하는 고양이를 키우지도 못하는 나를, 아직도 먼저 살던 동네아이들은 삼순이엄마라고 부르며 따르고 있다.
일순이가 우리집에 있을 땐 참고생이 많았었다.
수도도 없이 그힘든 펌프물을 퍼올려서 취사며 청소, 빨래를 해야했고 2백평도 더 되는 넓은뜰에 배추며 무우, 상치따위 소채를 가꾸어 먹었는데 그많은 일들을 병약한 나를 대신해 일순이는 묵묵히 잘도 해주었다.
전기불도 없는 산골에서 선머슴애처럼 소를 몰고 다니며 꼴을 뜯기던 일순이는 그런 일들을 펄펄 날듯이 해치웠다. 추운 겨울 어두운 새벽에 학교가는 이순이의 가방을 들고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는 다정한 언니였고, 아들아이가 짓궂게 그의 본명을 거꾸로 불러 옥귀신이라고 놀려도 화내는 일 한번 없이 웃기만하는 너그러운 아이였다.
내 병이 심한 고비를 넘기고 수도도 끌고, 부엌이랑 집구조를 편리하게 고친 뒤에 나 혼자서도 살림을 하기에 별 불편이 없어진 다음, 그는 시골서부터 동경하던 피복공장엘 들어갔다. 나쁜 친구를 만나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걱정하는 나를 위하여 명절 때면 꼭꼭 친정을찾듯 우리집을 다녀가곤 하던 일순이가 저렇게 건실한 신랑을 만나 시집을 가게되었으니 이제 내 마음도 놓인다.
시골서 그의 양친과 동생이 올라왔다. 순박한 나무등걸같은 손으로 내 손을 꼭잡고 아무것도 모르는 딸년을 잘 가르쳐 주었다며 고마워하는 그들에게 나는 속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웬걸요. 순박한 당신네의 딸에게서 착하고 다정한 참인간의 소중한 모습을 배운걸요. 그리고 멀지않아 일순이가 아기를 낳으면 나도 할머니라고 불릴 자격을 얻어도되겠지요?』하고.

<경기도안양시안양 6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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