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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주말을]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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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병기 지음, 학고재
290쪽, 1만2000원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한.일 사학계의 주요 논쟁거리 중 하나다. 특히 비문 중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 百殘○○新羅 以爲臣民'(백제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속민으로 줄곧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 바다를 건너와 백제 ○○ 신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란, 이른바 신묘년 기사가 문제였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정복, 경영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우리 학계의 대응은 그간 수세에 놓인 인상이었다. 1883년 최초의 탁본을 일본군이 떴다는 등의 상황을 들어 변조를 주장하며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거나 문장의 방점을 어떻게 찍어 해석하느냐 정도의 반론에 그쳤다. 심증은 있되 물증을 대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광개토대왕비의 변조를 실증적으로 밝힌 교양서다. 대만 유학 후 전북대 중문과 교수로 있는 지은이가 지난해 4월 한국고대사학회 학술회의에서 발표돼 일차 검증을 받은 주장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것이 이 책이다.

김 교수는 서예학자답게 광개토대왕비의 여러 탁본을 분석해 ^점을 제외한 모든 획이 거의 직선이며^세로로 계선(界線)을 넣어 문장을 세로로 맞추었고^한 획의 굵기는 거의 같다는 등의 '고구려체'특징을 찾아냈다.

그런데 신묘년 기사 중 문제의 '渡海破'는 사진①에서 보듯 문자열에서 좌우로 벗어났다. 기존의 글자를 부분적으로 고치느라 계선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또 최초 탁본을 뜰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명조체처럼 획의 굵기가 변하는 것도 변조의 증거로 든다.

여기에 신민(臣民:같은 임금을 섬기는 무리)과, 고구려만의 용어인 속민(屬民:나라는 달라도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의 민족)의 차이에 주목해 변조되기 전의 글자를 추론해 냈다. 변조하기 쉽고, 앞뒤 문맥에 맞을 것 등을 고려한 결과 '도해파(渡海破)'는 '입공우(入貢于)'를 고친 것이라 결론 짓는다(사진②는 入자를 渡자로 변조하는 과정).

이렇게 하면 신묘년 기사는 '백제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속민으로 줄곧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 백제와 ○○, 신라에 조공을 드리기 시작했으므로 왜도 고구려의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되어 다른 사실(史實)과 부합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20년 전 우연히 접한 탁본을 베껴쓰다 '붓이 콱 막히고' 강의 중 신민과 속민의 차이에 '번쩍 눈을 뜬' 경험 등과 한.중.일 학자 논쟁, 연표를 더해 재미와 깊이를 겸한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김성희 기자 jaejae@j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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