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 체질에서 벗어나| 78년 유가 안정 후 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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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제 금 시세가 아주 둔감해졌다. 금 시세는 국제적인 긴장, 정치정세의 급격한 변동에 따라 값이 뒤는 역사와 속설을 지녀왔다. 전쟁이 난다든지 국제적인 정치거물의 신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값이 폭등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금값은 긴장에 면역이 생겼는지 왠만한 사건에도 끄떡하지 않게 됐다. 최근만 해도 폴란드사태, 미국의 리비아 전투기격추, 남아의 앙골라 침공, 「사다트」이집트 대통령 암살 등 끊임없는 국제긴장에도 꿈쩍 않는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그리스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하는 등·정치적인 변혁에도 아주 둔감해지고 절대 반응이 있어도 지속기간이 아주 짧다 런던의 금시장 시세를 보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직후인 70년 1월에 온스당 8백인 달러까지 올랐고 그후 떨어졌다가 이란 이라크 전쟁 때는 7백 달러까지 올랐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긴장에 대한 금 시세의 감수성 이 서서히 약해져 최근까지 약세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3가지 이유를 들고있다.
첫째는 원유정세 진정세. 국제 금시세는 73년∼74년과 78∼79년에 크게 올랐다. 오일쇼크에 따른 원유 값 인상과 함께 금값이 뛴 것이다. 즉 원유값 인상이 세계적인 인플레를 초래하여 금값 인플레도 불러왔다는 이야기다.
80년 1월의 금값 대폭등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 때문이기보다 제2차 석유위기의 인플레 후가 그때 피크를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OPEC(석유수출국기구)가 2년만에 원유통일가격을 이루고 향후 1년간 가격동결을 하는 바람에 금값은 원군을 잃고 원유 값과 함께 안정됐다는 뜻이다.
둘째는 금 수급 출화세. 세계의 새로운 금 공급의 4분의3은 남아프리카 연방과 소련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남아프리카의 생산은 자원보존, 품질의 저하, 노동자 부족 등으로 약간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련은 최근 3년 연속 흉작으로 인한 곡물수입의 증가, 재정악화, 폴란드에 대한 경제지원 등으로 돈이 많이 필요하게 돼 금 매각 광이 크게 늘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80년에 80∼90t를 수출했으나 올해는 1백 천∼2백t 쯤 내놓을 것으로 보여 국제시장의 금 물량이 훨씬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금의 수요는 줄어든 것으로 본다. 최근 금값하락으로 장신구용 소비는 다소 회복됐으나 그래도 공업용은 소비 둔화가 회복되지 않았고 금을 사두는 경향도 부쩍 줄었다. 게다가 80년도에 금값을 자극한 것으로 알려진 산유국들의 금 구입 러시도 끊겼다. 이 때문에 국제 금시장의 수급이 진정됐다는 설명이다.
세째는 세계경기 정체동설. 금은 장신구나 공업용으로 많이 쓰이나 경기가 침체하면 그렇게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금을 사두는 경향도 소득이 시원치 않으면 줄어들게 마련이다.
최근의 세계경제는 석유의 저의 여파로 에너지절약 무드가 팽배 해있고 모든 면에서 소비절약, 수요감퇴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세계경기가 정체해있기 때문에 금 시세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고금리 정책이 국제상품에 대한 투기 인기를 냉각 시켰으며 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고금리도 이제 고개를 넘어 하향 조정되고 있다. 그런데도 국제 금 시세는 전혀 반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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