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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화재 <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북한지역은 고구려의 벽화고분이 많아 고대사자료의 보고다. 이들 고분은 유감스럽게도 일찌기 도굴돼 무장 유물이 전무한 터이지만, 그 벽면에 그려진 그림과 글씨만으로도 고대 미술사연구에 막중한 가치를 지닌다.
남한지역에는 공주 송산리와 부여 준산리고분을 비릇해 영주와 거창에서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 벽화가 발견되었으나 모두 5∼6기에 불과하고 그림 내용에 있어서도 현무·주작·연학문·주악도등 단조로운 편이다. 이에 비하여 북한지역의 벽화 고분은 51기를 헤아릴뿐아니라 내용 역시 다채롭고 스케일이 크다.
북한의 벽화고분은 그절반 이상이 해방후 발견된 것이다. 그중에도 황해도 안악3호분(일명 동수묘 혹은 미천왕릉 1949년발굴)은 그동안 우리 학계에도 상세히 알려져 있거니와 평양근처의 강서덕흥리고분(77년 발굴)이 또한 안악고분에 비견될만큼 내용이 온전하고 풍부해 주목되고 있다. 이 두 고분은 보기드물게 축조연대가 확실하며, 안악3호분이 서기357년, 덕흥리고분이 408년이라기록돼있다.
안악고분에 대해서는 이 고분발굴에 참여했다가 동란때 남하한 채병서교수가 보고한 이래, 『한국미술전집』벽화편(동화출판공사·74년간)과 김원룡저 『한국고고학개론』(73년간)등에 도판으로 소개돼왔다.
작금년에야 비로소 자료가 입수된 덕흥리 고분 벽화의 경우, 무덤의 주인공이 유주날사 진이며 당시 그구려 영토가 중국 북경에 미치었음을 알려주어 고대사에 새로운 사실을 제시했다. 즉 피장자의 출신지와 경력을 상세하게 적은 묵서명에 의하여 당시의 관제·관명및 지배 영역이 명확해졌고, 인물풍속을 그린 벽화에 의하여 당시의 생활과 문화·종교·신앙등을 광범하게 알게되었다.
덕흥리 고분벽화의 전모는 금년 봄 『계간미술』17호에 단한번 소개될 정도로 부진한 편인데, 김기웅문화재전문위원의 관찰에 의해 비교적 상세히 파악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해방후 이재까지 3천여 고분을 발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대표적인 3백여 고분을 정밀조사함으로써 고대 한국사회가 중국과 무관한 특색을 밝혔다고한다.
양적인 면에서는 한국사학계가 위만초선시대부터 원삼국시대로 분류하는 시기를 북한에서는 「고조선시대」라 일컫는다. 즉 기원전4세기부터 서기3세기에 해당한다. 초기의 토광묘와 압록강 연안의 심귀리·독노강 유역에서 발굴조사된 고구려 적석총도 중요한 유적들이다. 고조선시대의 대표적 발굴고분은 평남?성리고분중의 하나인 고상현묘(기원전14년)와 평양근처의 부조예군묘등이며, 이들고분은 신라 건국및 경주의 적석목곽분들과 연결돼한층 주목되는 것이다.
그밖에도 해방후 발굴된 주요 벽화 고분은 남경리1호분, 평양역전고분, 요동성총, ?수리고분, ?성리1·2호분, 대안리1호분, 복사리고분, 대보산고분, 마영리고분, 팔청리고분 등이며 또 진파리1호분은 아직 동명왕릉으로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릉의 구조와 부장품등이 고고학상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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