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일 정상회담 예정대로 열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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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가 26일 야치 쇼타로 사무차관의 발언과 관련해 외교통상부로 초치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잠시 잠잠하던 한.일 관계가 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외교부 주변에서는 "자칫하면 지난 3월보다 더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일 갈등 관계는 4월 7일 파키스탄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최고조에 달했다가 이후 가라앉는 형국이었다. 6일엔 양국 외교장관이 일본 교토(京都)에서 만나 6월 하순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공식 합의하면서 양국 관계가 비로소 정상화되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분석을 낳았다.

하지만 야치 차관의 발언은 꺼져가던 갈등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더욱이 발언 주제가 한.미 관계라는 점이 문제였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민감한 주제를 건드린 셈이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6일 "최근 잇따라 터져나오던 한.미 갈등 논란을 겨우 잠재워 가는 마당에 이른바 우방이라는 일본의 외교 실무 최고책임자가 불을 지피고 나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까지 추진하면서 양국 관계를 공고히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웃 국가가 돕지는 못할망정 훼방이나 놔서야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에는 '이참에 일본내 강경론에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특히 북한 핵문제와 관련, 일본의 정치인과 언론이 ▶핵실험 징후설▶유엔 안보리 회부▶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개최 등을 오히려 미국보다 더 강경하게 주장하는 데 대해 정부 당국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던 터였다. 한 당국자는 "일본 쪽에서 시도 때도 없이 터져나오는 설은 99%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일본의 무반응도 갈등을 증폭시킨 주된 요인이었다. 정부는 야치 차관의 발언이 나온 당일을 비롯, 여러 차례 각종 외교경로를 통해 일본 측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아무 답변이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측의 무시 전략이 청와대를 분노케 했다"고 전했다. 이날 청와대와 외교부 대변인이 '주제넘은 일''묵과할 수 없다''대단히 부적절한 발언'등 외교관례상 거의 쓰지 않는 용어를 동원한 것도 정부 내 강경 기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란 설명이다.

향후 관심의 초점은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반반"이라며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성사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은 일본 정부로 넘어갔으며, 개최 여부는 일본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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