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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여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나는 전라남도의 고흥이라는 읍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었다. 참새같이 어린 내가슴을 떨게한 몇가지 광경들이 지금도 떠오른다. 검은 우산을 접어 단장처럼 짚고 걸어오는 청국사람이 무서웠다. 겨울철 논두렁에 모닥불을 피우고 동냥술에 취해 춤추는 문둥이들이 무서웠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면 황급히 어딘가 숨었다가 달음박질쳐 집으로 돌아봤었다. 간혹 마을에 곡마단이 들어왔었다. 외할머니가 『아기들 잡아간다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 가슴설레게 해준 트럼핏 소리틀 따라 몰래 나가고 싶었었다. 그것은 꽉 막힌 읍촌에 들어온 곡마단이나 그 사람들을 싣고온 자동차운전기사들은 당시의 멋장이들이었고 걷잡을수없이 펼쳐져가는 어린가슴에 꿈을 안겨주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나는 외할머니말을 듣지 않았다가 어머니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대문밖으로 쫓겨났었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나노도로 가는 포구에 내렸었다.
섬에는 대서방을 차려놓고 가난하게 사는 삼촌댁이 있는것이다.
보트처럼 작은 똑딱선이 기다리고 있는데 바닷가에 솟은 암석에 붙은 빨간 불가사리가 별처럼 고왔다.
삼촌댁에서 하루를 묵고 작은엄마가 파닥파닥 뛰는 도미 한마리를 사줘 그걸 들고 새로이 솟는 감격같은 기분에젖어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후에도 그런일이 잦게 일어났던걸로 기억된다.
툭하면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어딘가 갔다가 돌아온다는것이 흡사 깜박깜박하는 심장에 캄프르액을 주입시켜주는듯 했고 하다못해 싱싱한 도미한마리라도 물고와서 식구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정으로 변해갔다.
나의 고달팠던 동경유학 역시 그런데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고 12년전 타히티 섬을 찾았던 모험에 가까운 해외여행 역시 꿈이 없었던들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보다 산소가 충만한것같은 넓은 세계에서 막막했지만 무엇인가 흡수했었고 많은 스케치 공부도 했었다.
지난해 겨울 영국의 하워드를 찾아 「에밀리·브론티」의 『폭풍의언덕』에 올라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맞을때의 통쾌감을 잊을수가 없다.
종교인이 세례를 받을때도 무척 행복하겠지만 그토록 노한 대자연의 폭풍우역시 나에게는 높고 깊고 뜨겁고 눈물겨운 사랑이었다.
또한번 가고싶은 곳이 하워드 이고 케냐의 킬리만자로의 기슭에 있는 자연동물원, 그리고 모로코의 라바트에서 기차로 장시간 천국같은 꽃밭을 뚫고가는 마라케시, 그곳에서 하룻밤 묵고나서 버스로 아가딜로, 아가딜에서 사하라로 가는 길목, 정말 또한번 가고 싶다.
그러고 보니 분명히 내집이 있는데도 없는것같고 내방에서 일을 하면서도 임시 방을 빌어서 제작하는 기분이며 잠이 안와 부대낄 때는 어디 붸노스아이레스등지의 3류호텔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이 든다. 떠돌이별, 후조인생이라고나 할까.
지금도 나는 더러 사람들이 어린시절에 무서워했던 검은우산을 짚은 청국사람으로 보일때가 있고 또 동냥술에 취해 춤추는 무서운 광경을 세상에서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어느 섬에 따뜻한 친척이라도 살고 있다면 훌쩍 떠나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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