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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인 때문에 집값 폭등 … 홍콩 시위, 숨은 이유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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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홍콩의 민주화 시위 9일째를 맞은 6일 오전 한 공무원이 정부청사 건물로 출근하고 있다. 시위대가 이날 정부청사 봉쇄를 사실상 해제하면서 공무원들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업무에 복귀했다. [홍콩 로이터=뉴스1]

홍콩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건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둘러싼 논란이 계기가 됐다. 학생들은 중국 당국이 확정한 선거 방안에 입후보자 자격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자 “진정한 보통선거를 달라”는 구호를 내걸며 점거 시위에 돌입했다.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비서 바오퉁도 이런 홍콩 대학생들의 입장에 동조를 표시했다. 6일 홍콩 언론에 따르면 바오퉁은 최근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은 20년전 홍콩에서 보통 선거가 실시되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며 “만일 중국 당국이 가짜 ‘보통선거’를 시행한다면 덩샤오핑(鄧小平)의 뜻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시위가 폭력적 결말로 끝날지 여부는 중국 당국에 달려 있다. 현재의 중국 지도자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진압 때의 지도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바란다”며 폭력 진압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당시 자오쯔양은 천안문 사태 강제 진압에 소극적인 입장을 지켰다가 실각했다.

 홍콩 시위 에는 정치적 이유 이외에도 경제적 이유가 있다. 6일 블룸버그 통신이 꼽은 홍콩의 7가지 경제적 변화 가운데 첫째는 터무니 없는 집값이다. 중국 본토인들의 홍콩 부동산 사재기로 집값이 6년 새 2.5배로 뛰며 젊은이들에겐 내 집 마련 자체가 불가능한 꿈이다. 두 번째는 치솟는 생활비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엔 물가 상승률이 연 0.5% 수준이었지만 요즘엔 3.4% 수준이다.

 세 번째는 본토인들의 유입이다. 돈 많은 본토인들이 밀려들면서 홍콩인들은 자신들이 밀려나고 있다고 느낀다는 얘기다. 조셉 쳉 홍콩시립대 교수(정치학)는 “과거 홍콩은 중국 본토와는 다른 ‘특별한 곳’이었는데,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그저 그런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홍콩 인들에 팽배해 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이밖에 ▶소득 불평등 악화 ▶금융 중심 홍콩의 위상 약화 ▶대기 오염 등 공해 ▶치열해진 대학 입시 등을 들었다.

신경보(新京報) 등 중국 언론은 이번 시위로 인한 경제 손실이 최소 3500억 홍콩달러(약 48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홍콩과기대 경제학과 레이딩밍(雷鼎鳴) 교수는 “이번 시위는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홍콩 경제에 미치게 됐다”며 “홍콩 주민 1인당 5만 홍콩달러 의 손해를 보게 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팽팽한 대치 국면으로 치닫던 홍콩 시위가 도심 점거 9일만인 6일 수습의 가닥을 찾기 시작했다. 홍콩 정부 공무원 3000여명이 정상 출근할 수 있도록 시위 학생들이 통로를 열어 주고 봉쇄를 완화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량전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은 ”6일 아침 또다시 공무원들의 출근이 봉쇄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며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설 것임을 경고했었다.

시위 지도부는 이날 아침 강경파 학생들의 반발을 물리치고 정부청사와 애드미럴티 지하철역을 잇는 통로를 열었다. 학생들이 정부의 요구 조건을 들어 줌에 따라 경찰은 강제 해산 방침을 보류했다. 학생 대표들은 또 중단됐던 정부 대표와의 공개 대화에 응하기로 하고 물밑 교섭에 들어갔다.

 이처럼 학생들이 한걸음 물러선 것은 생업과 일상생활의 불편을 겪는 시민들 사이에서 이젠 시위를 그만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홍콩의 각 대학 총장단과 전 대법관 앤드류 리 등 홍콩 원로들도 5일 성명문 등을 통해 “이미 학생들의 주장과 바램은 충분히 전달됐다”며 학생들에게 점거를 풀고 학업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애드미럴티와 몽콕 등 3곳에서 계속 간선도로를 계속 점거 중이다.

  홍콩=예영준 특파원,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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